지금도 기억이 생생
예과 2학년 첫 수업시간
꿈을 안고 초긴장 상태로…
어언 세월,
우리나이 50대 후반, 치과계에 30년 그리고 입학과 더불어 40년, 이제는 히끗히끗 머리가 약간씩 빠지고 슬쩍 나온 배에 둥굴둥굴한 턱, 거의 외모 평준화된 모습들이지만 어디서라도 만나면 왜그리 반갑고 사랑스럽습니까? 저만 그런가요? 여학생이라고 뭐 잘해 준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6년간을 한 교실에 묶어둔 가족 같은 유대감을 주는 것도 같고요, 개업가 전장에서의 동지애 그건 것도 있을거 같아요….
우리 여학생들은 “여자가 시집이나 잘가서 편히 살 것이지 공부는 무슨 놈의 공부고!”하는 소리를 기본으로 들어야 하는 풍토에서 눈치 공부하던 불쌍하다면 정말 불쌍한 세대입니다. 그저 대우 받는다면 시험기간 노트 빌려 달랄 때 정도 미팅이나 한다치면 완전 찬밥신세, 음료수 판매나 시키고 정말 너무들 하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만나면 한없이 반갑기만 해요. 적어도 학부 시절에는 제가 가장 공부 열심히 한 학생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어요. 왜냐구요? 저는 목숨 걸고 치의예과에 전과를 해 온 사람이거든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요. 저야 청운의 꿈을 안고 초긴장 상태로 등교한 예과 2학년 첫 수업 시간, 주위를 둘러보니 의외로 군기가 빠진 느낌은 아니였지만 자신들이 치과의사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그런 표정과 말투…. 이렇게 태도에서 천지차이가 나는데 시험 답안지에서 차별화가 안나면 세상 불공평한거죠. 맞죠?
예과를 마치고 소공동 본과로 가보니 웬걸 선배님들은 다들 제비님들 같으시고 무슨 다방에 무슨 마담 운운하며 완전 명동파들 이였죠. 내눈에 그중에서 가장 성실하고 멋있어 보이는 분은 2년 선배인 지금의 내 남편. 웃지 마세요. 착각은 자유이고 무죄라면서요.
본과 1,2학년 내내 재시 삼시와의 전쟁을 치루고 원남동 새 병원에서 원내생 생활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치과의사 기분이 났었죠.
원내생때는 오빠 동기분들이 엄청 두각을 나타내시는게 인상적이였구요. 그렇잖아요. 공부 잘한다고 실습 잘하는거 아니고 실습 잘한다고 개업 잘하는 거 아니라는 것을….
저는 성미 급한 남편 덕분에 본과 3학년때 전격적인 결혼을 해 주위 사람들에게 가히 충격이었죠. 따가운 눈총과 시선 엄청 받았습니다.
어찌됐던 그 결과, 후배 여학생들의 평균 결혼 연령을 낮추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죠.
치대 기마다 특징이 있다는데 우리 동기들은 조용한게 특징이죠. 요란하게 튀는 기도 많더구만 우리 동기들은 일찍이 해탈들을 하셨는지 하나같이 감투라면 질색들을 하시더만요. 그것이 약간 불만스러울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예요. 투박한 질그릇처럼 순박한 우리 동기들이 순수하고 너무 좋아요.
그거 생각나세요?
본과 4학년 총대 선거 하던 날 다들 사양하는 바람에 결석한 사람을 당선시켜 그 사람이 그야말로 총대 메고 총대 했잖아요. 졸업후 잠시 뿔뿔히 헤어졌지만 공직 몇사람만 빼고는 다시 개업가로 모여 30년이 되었네요.
‘은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시기가 된거 같아요. 저는요 결론부터 얘기 할께요 “내 사전에 은퇴는 없다. 내가 건강하고 나를 찾는 환자가 있는 한 단,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쉬엄 쉬엄 한다” 지독하죠?
저도요 소시적에는 환자 보는게 지겹고 언제 그만두나 그런 생각만 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요 요 몇 년간에는 멀리 멀리 여행이라도 갔다 돌아오면 내가 있는 자리가 새삼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데요. 가장 편하고 보람 있는 자리 라고요.
별로 동의들을 안하시네요. 신기한 것은 여자 선생님들은 동네에 가서 ‘은퇴’라는 말 들어 본적이 없어요. 오히려 남자 후배들한테서 더 들어요. 이 이유를 저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았는데 필수와 선택의 차이가 아닐런지요…. 그리고, 여자들은 질기답니다.
동기님들!
마나님한테 잘들 하세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인생은 50부터라는 말도 있다는데, 저로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