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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수필(788)>
"히말라야, 길에서 길을 찾다"
이한우(경남 진주시 이한우 치과의원 원장)

신년특집 신들의 영역! 신들은 만년설로 하얀 식탁을 차려놓고 달빛으로 빚은 술과 첫 햇살로 구운 빵으로 저들만의 잔치를 열고 있었다. 서울치대 산악반 OB팀은 치계원로이신 김정균, 정관희 원장님을 비롯 15명의 대원이 참가한 가운데 지난 11월 9일부터 19일까지 히말라야 트래킹에 다녀왔다. 세상의 길들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부처도 예수도 길을 가다가 출산되어 세상에 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들의 삶도 길에서 길로 이어지는 것에 다름없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우리는 길을 통해서 가고 있는 것이다. 길은 삶에게 어떤 의미인가? 여행을 떠날 때마다 나는 길에 대한 생각으로 하염없이 젖어든다. 지난 11월9일 드디어 히말라야 트래킹에 나섰다. 비행기를 타고 한반도를 벗어나자 바다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파도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하얀 포말들을 이어가며 해변으로 달려들고 푸른 바다에 하얀 선들을 그으며 배들이 오가고 있었다. 바다에도 길은 있어 나름대로의 질서를 지키고 배들이 오가는 것이다. 물론 하늘도 아무 곳에나 길을 내어주는 것은 아니어서 그 길들은 정밀하게 조정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길들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우리들의 안전을 지켜주고 목적지까지 우리를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길들의 의미가 단순히 그러한 기능적인 것만이 아님 또한 분명하다. 비행기가 바다를 넘어 대륙으로 들어서니 길들은 여기저기에서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황량한 벌판을 따라 가느다란 직선으로 서로 교차되는 길들. 헐벗은 짐승의 등허리처럼 엎드리고있는 산맥들의 능선위로 힘겹게 돌아 오르는 길들. 그 길들을 보고 있노라니 눈시울이 서늘해졌다. 그 길들은 세상의 길들과 닿아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 길들은 저 멀리 피안을 향하고 있지만 끝내 도달할 수 없는 슬픔으로 느껴졌다. 히말라야 산군 중의 하나인 안나푸르나 산군까지 이르는 길은 멀었다. 아침 8시 30분에 출발해서 홍콩을 경유하여 우여곡절 끝에 밤 11시나 지나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 날 대책없이 6시간이나 연발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포카라로, 거기에서 또 버스를 2시간 가량 타고 도착한 안나푸르나 트래킹 시발점인 찬드라코트는 이미 어둠의 이불을 덮고 잠들어 있었다. 거기까지 가는데 근 이틀이 걸린 셈이었다. 우리 일행은 랜턴을 켜들고 야간산행을 감행하였다. 마을들을 지나 조금 올라가니 계곡이었다. 다행히 보름이어서 구름에는 가렸지만 달빛이 희뿌윰히 계곡을 비추고 있었다. 거기에 우리 인간들의 길과는 다른 물들의 길들이 있었다. 달빛아래 계곡물들은 흰 실타래를 아래로 아래로 풀어 내리고 있었다. 커다란 바위에 걸리면 실타래를 빗어 옆으로 흘리고 경사가 급하면 급한대로 낮으면 낮은대로 물들은 길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자연의 길들은 거꾸로 오르지 않으며 물과 바위와 땅들은 한 목소리로 길들을 만들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이번 트래킹의 정점인 안나푸르나 산군의 위용과 해돋이를 보기 위해 3천2백미터에 위치한 푼힐 전망대를 향해 새벽 산행에 나섰다. 요 며칠 동안 해돋이도 산들의 장관도 일기불순으로 보지 못했다는 다른 트래커들의 말에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밤 늦게는 급기야 빗방울이 들기도 하여 마음들이 어두웠다. 하지만 이곳까지 와서 푼힐을 올라가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모두 무거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새벽 4시 10분에 랜턴을 켜들고 1시간 10여분 걸려 도착한 푼힐 전망대는 그러나 밑에서 우려하던 것과는 달리 맑게 개어 있었다. 마침 보름이었다. 보름달! 나는 그렇게 밝은 달을 난생 처음으로 보았다. 감히 인간들이 오염시킬 수 없는 맑은 대기를 뚫고 이미 조금 씩 지는 달은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우아하게 떠서 그 빛을 사방에 뿌리고 있었다. 추위에 덜덜 떨며 어둠 속에서 우리는 해가 뜨기를 그리고 설산들이 그 위용을 드러내 주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트래커들도 사진기를 설치하거나 더 전망이 좋은 곳을 차지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며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달이 밝은 데도 별들은 수많은 빛들을 뿌려대며 저마다 정해진 위치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맑은 서쪽하늘과는 달리 동쪽 하늘은 구름이 조금 덮여 일출을 보기 힘들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숨죽이며 기다렸을까. 사위는 아직도 어둠 속에 침묵하고 있는 중에 동쪽 하늘에 구름 속으로 약간 붉은 기운이 돌더니 갑자기 멀리 남동쪽에서 황금빛으로 작은 번쩍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밤을 새워 달려온 순결한 첫 햇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