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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8) 3년의 끝자락에 서서…/진승욱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또 다른 시간을 준비해야 하는 지금
그동안 추억들이 더욱 소중해진다

 

서해 갯벌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맑은 늦가을 하늘아래 인적이 드문 갯벌가에서 나지막한 구름들 사이로 서서히 저물어가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너무나도 평화로울 뿐만 아니라, 일상에 지쳤던 마음도 함께 사라지는 듯하다. 가까운 곳에 바다가 지천으로 펼쳐져 있어도 그리 쉽게 찾아가지지 않았었지만, 작정하고 갯벌가로 나가 낙조를 바라볼 때에는 시간이 얼마나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이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이런 넉넉함을, 여유를 언제까지 즐길 수 있을까하는 아쉬운 마음을 가져본다.


뒤돌아보면 벌써 3년여의 시간이 흘러갔다. 처음의 막막한 기대와 약간의 설레임, 낯선 땅에 대한 조심스러움을 가지고 이 곳에 온지도 벌써 그리되었나 생각해보면, 지나간 사간들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언제나 그렇듯이 지나고보면 아무일도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마치 큰일이라도 되는 듯이 호들갑을 떨며 아옹다옹 서로 다투기도 했었고, 공중보건의사라는 제도의 한정된 틀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답답한 마음을 술 한잔에 씻어낼 때도 많았던 것 같다. 현역사병으로 군대에 가는 대신 보건소에서 나름대로 편하게 지내니 좋겠다라는 친구들의 질투아닌 질투(?) 또는 개업하거나 사회로 나가면 그런 황금기가 또 없다는 선배들의 부러움같은 시선들이 나를 더 옭아맸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근무하신 선배님들의 근무환경에 비하면 비교적 많이 좋아지고 자유로워진 면도 있을 것이고, 오히려 더 제약이 가해진 부분들도 있겠지만 3년이라는 시간 , 그 자리에 서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러저러한 갖가지 이유들로 답답한 마음도 있었기마련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법률조항 때문에 현실적인 면에서 많은 벽에 부딪히거나, 합리적이지 못하고 경직된 사고로 시행되는 많은 일들 속에서 고민도 많았었다.


보건소가 인근 진료기관과 진료실적으로 경쟁을 해야되는 현실들이며, 당연히 해야되는 일들이 상급기관으로 갈수록 당연히 안해야되는 일로 돌변하는 일들도 다반사였다. 하지만 이제는 저물어가는 노을처럼 그러한 상념들도 내 마음속에서 차차 사라지리라 생각하니 시원하기도, 섭섭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한껏 게으름을 부린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남도에서 지내온 시간은 그리 길지도 그렇다고 결코 짧은 시간도 아니었지만, 앞으로 또다른 시간을 준비해야 되는 입장에 서보니 그동안의 추억들이 더욱 소중해진다.


돌이켜보면 많은 사람들을 새로 만났었고, 그 속에서 부대끼며 스쳐지나갔던 다양한 경험들 또한 앞으로의 인생에서 튼튼한 밑그림으로 채워지겠지만, 앞으로 언제 또 이런 순수한 만남들을 맞이할수 있을런지….


답답한 마음 이면에는 생각할수록 그립고 즐거웠던 기억들도 마치 흑백사진처럼 간직돼 있다. 언젠가는 한밤중에 지소문을 두드리는 할머니가 감기에 걸려서 아프다고하여 내과선생님이 측은한 마음에 짜증도 안내시고 손수 약을 지어주니 그 처방약을 함께 데리고 온 강아지에게 먹이고는 고맙다며 내과선생님 손을 꼭 쥐어주시던 일도 있었고, 스켈링이나 레진 치료비 몇만원이 준비가 안되서 다음날 고추며 호박이며 심지어는 김치나 젓갈로 대신하시던 아주머니들을 생각하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혼자서 외로이 사시는 할머님들은 작은 치료한번에도 몇 번이나 허리를 숙이시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시고, 어쩌다 차라도 한잔 대접하면 우리들이 머쓱할 정도로 감사해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인근 보건지소의 동료 선생님들과도 환자보는 일보다는 맛있는 거 먹으러 남도땅을 이리저리 돌아다닌 일이며, 함께 운동한 후 밤마다 반주를 겸한 야식을 먹고 늘어가는 뱃살을 서로 한탄하고, 멋진 사진을 찍어보자며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길을 잃어서 한참을 헤매던 일도 생각난다. 지금은 그 선생님들 대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