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발치한 환자
아프지 않게 빼줘서
고맙다고 선물을 가져와…
장 덕 상
-89년 연세치대 졸
-현)일산 크리스마스 치과의원 원장
일찍 일어나는 것과는 담쌓고 지내는 처지에, 유난히 이른 시간에 절로 눈이 번쩍 뜨여 자리에서 일어나, 항상 묵직하던 허리도 한결 가볍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허겁지겁 주섬주섬 헐레벌떡하면서, 난생 첨으로 하악 총의치 하신 이래로 저와 결혼(?)하신 할머니 환자 분이 또 왔다고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보는 시선을 뒤통수로 느끼며 대기실을 지나 원장실로 도망치듯 출근하던 여느 날과는 달리, 유난히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직원이 반겨주는 날이었다.
웬일로 오늘은 팔자에 없는 모닝 커피 한잔 마셔 보겠구나 하며 흐뭇해하는 사이, “원장님, 전에 사랑니 수술 발치하신 환자분께서, 하나도 안 아프게 잘 빼줘서 고맙다고 선물을 가져 오셨어요”. 청록색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작은 향수병. 애인 만날 때에도 써본 적이 없는 향수를? 요즘 세상에 8번 써지칼 하나 해주고 촌지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신선하기도 했지만 향수라는 것이 묘한 충격을 주었다.
젊은 여자 환자라면 혹시 다른 생각(?)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고 했겠지만, 선물을 준 환자는 동남아 출신 근로자 남자였으니까. 허걱! 동남아에는 게이가 많다던데. 에이 설마.
향수병 밑에 들어있는 작은 카드. “힘들게 사랑니를 빼주어서 이 향수처럼 느꼈어요, 저는 잡혀서 집에 가면 안되서 숨어 있어요. 고맙습니다”.
초등학생의 필체로 씌여진 글을 읽으며 뭔가 울컥, 뭉클함을 느꼈다.
한국 주민등록증 소지자는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 주어야 할 일들을 외국근로자들이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나마 해주고 있어서 그나마 근근히 돌아가던 공장들이 금번 집중 단속으로 기계를 멈추고 문을 닫는 상황들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다.
4년 이상 장기 체류자부터 우선적으로 출국시킨다는데, 그런 사람들일수록 본의 아니게나마 한국 경제 발전에 더 많이 기여한 사람들이라고 보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현행법 위반자를 집행하는 당국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현실적으로 어떤 훌륭한 대안을 이제는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기 체류자일수록 한국에 더 많이 적응이 돼 강제 귀국의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고,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숙련된 기술자를 잃어버리는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것도 아깝고, 차제에 산업연수생 제도의 획기적 개선 또는 외국인 고용촉진법을 만들어서라도 양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물론 외국인 근로자가 받는 보수가 대부분 국외로 유출된다는 점에서 국부의 손실을 우려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이 하는 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임금을 받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에게도 결코 손해만은 아닌 것이다.
지구촌 시대에 걸맞는 대외정책의 일환으로서라도, 그리고 해외에 나가 고생하고 있는 우리 교민들을 생각해서라도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아니 좀 늦은 감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한국의 3D 업종과 외국인 근로자가 서로 공생하는 win-win 전략을 세워야 할 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