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씨는 ‘P의원"을 운영하는 의사였다. 평소 사업을 확대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자본이 부족했다. 그러던 중 의료용품이나 의료장비를 판매하고 있던 H회사가 P씨에게 공동사업제의를 하게 됐다. 공동사업내용은 H회사가 병원의 건물, 의료기구, 기타 설비, 직원인력 등을 제공하고, P씨는 P씨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저작재산권과 의료기술 및 단골환자를 제공하기로 하여 동업계약을 하게 됐다. 병원을 운영하여 얻은 수입은 H회사와 P씨가 일정한 비율로 배분하기로 했다. 동업계약 내용 중에는 P씨가 계약 취지에 반해 계약을 해소하고 다른 동일한 병원을 개설하는 경우에는 일정한 패널티를 물게 하는 규정이 있었다.
개업 초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P씨와 H회사간에 다툼이 발생하게 됐다. 결국 P씨는 병원을 그만두게 됐고(병원 개설자는 P씨가 지명한 고용의사가 개설자로 돼 있었다), P씨는 같은 구(區)내에서 의원을 새롭게 개설하고 병원에서 사용하는 기술을 똑같이 사용하여 환자를 보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된 H회사는 P씨가 계약상 “경업금지의무(경쟁업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를 위반했고, P씨가 개발한 저작재산권을 이미 회사에 양도했음에도 타의원을 개설해 사용하므로 계약을 위반했다며 P씨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P씨는 H회사와 P씨 사이의 동업계약은 강행법규인 의료법을 위반한 범법행위로서 계약 자체가 무효이니 자신은 손해배상을 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어떻게 판단하였을까? 계약이 우선한다면 약속을 어긴 P씨에게 잘못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고, 의료법이 우선한다면 의료법 위반한 계약은 무효라고 해석하여 P씨는 H회사에 아무런 배상을 해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될 것이다.
우리 대법원은 “의료법 제30조 제2항에서 의료인이나 의료법인 등 비영리법인이 아닌 자의 의료기관 개설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바, 의료법은 의료인이나 의료법인 등이 아닌 자가 의료기관을 개설해 운영하는 경우에 초래될 국민 보건위생상의 중대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제정된 이른바 강행법규에 속하므로 이에 위반해 이뤄진 약정은 무효이다. 따라서 이 사건 계약의 성실한 이행을 담보하기 위하여 이 사건 계약에 포함된 경업금지약정 역시 무효가 된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03다2390판결 참조).
아울러 이 사건 계약의 이행을 위해 체결된 부수약정으로서 지적재산권 양도계약도 당사자 사이에 달리 주 계약인 동업계약이 무효이더라도 이를 체결하였으리라고 볼 만한 사정이 없으므로 이 역시 무효라고 판단했다.
한편, H회사는 P씨가 의료법상 동업금지를 잘 알고 있는 의사로서 계약을 체결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수수했음에도 이 사건 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령에 위반되어 무효임을 알고서도 법률행위를 한 자가 강행법규 위반을 이유로 무효를 주장한다 하여 신의칙 또는 금반언의 원칙에 반하거나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외법률사무소 hhjun@daeo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