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마주보는 사람의 치아에
가장 먼저 시선이 가던 습관에
누수현상(?)이 생겼으니
이제는 판 접을 시 간이 된 모양이다.
치과에 緣이 닿은 지 벌써 20여년이 지나 내 인생의 절반을 넘어섰다.
난, 부친이 敎員이라 어디한 곳 情 붙일 만한 그런 지역을 특별히 갖지 못하였다. 짧게는
1년 길어야 2, 3년마다 이리저리 옮겨다녀 그런가보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개업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곳이 충북의 조그만 도시인 충주다.
이곳에 자리내림한 지 벌써 17년이니, 잘잘못을 불문하고 내가 치료한 사람만도 아마
충주시민 10명중 1명은 되나보다. 그러니 이게 어디 보통의 因緣인가! 게다가 나의 두 아들도
이곳에서 나서 지금껏 살고 있으니 충주는 故鄕이나 다름없이 느껴지고 이젠 어디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는 게 두렵기조차 하다.
그런 내게 또 한 곳 緣이 닿은 곳이 있으니 바로 ‘보길도’란 섬이다.
고교 선배이면서 대학은 같이 졸업한 K모 선배가 전남 완도에서 개업하셔서, 여름 휴가로 그
곳을 찾은 것이 동기가 되어 10여년을 드나들게 되었으며 지금은 열댓 평의 아담한 집도
쉼터로 마련하게 되었다.
지난 주말, 나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C대학의 K교수, 개인사업을 하는 K형과 창살 없는
감옥(난, 내가 일하는 곳을 종종 이렇게 표현한다)을 탈출하여 우리들만의 시간을 갖기
위하여 2박 3일의 일정으로 보길도로 향했다.
완도에서 1박을 하고 이른 아침 우린 화흥포에서 청별행(참고로 청별은 보길도 內의
地名이다) 배를 탔다. 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언제나 반겨주는
섬마을 식당에서 간단한 조식을 마치고 이곳 저곳을 돌아보았다.
맑은 날엔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며 세연정, 낙서제, 동천석실 등등 그 곳엔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가 산재해 있고 또한 우암 송시열의 ‘글씐바위’도 있다. 둘은
朋黨政治에서의 서로 다른 수장으로, 禮訟論爭으로 대립하였는데, 묘하게도 각기 다른 시간에
보길도를 거쳐가며 상반된 자취를 남기고 갔다. IMF체제 이후 극복해야 할 과제는
산더미처럼 많은데, 과거 그들의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져 再現됨은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짧은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뱃길에선 파도가 다소 높아 걱정하는데, K교수가 보이지 않아
찾았더니 기관실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누가 기계과 교수가 아니랄까봐~ 그게 바로
Professionalism이지...
그런데, 난 어떻게 된 거야! 첫날밤, 우리가 삼겹살 돌구이로 소주잔을 기울일 때 오셨던
옆집 아저씨를 대하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일흔의 나이에도 상당한 주량을 지닌 아저씨가
안주는 거의 드시질 않으셨는데, 아뿔싸! 치과의사인 내가 삼겹살이나 권했다니....
전에는 마주보는 사람의 치아에 가장 먼저 시선이 가던 습관에 누수현상(?)이 생겼으니
이제는 판 접을 시간이 된 모양이다. 가뜩이나 요즈음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저 때리면 맞고,
밟으면 밟혀주고 그렇게 살아야하는 세상인데. 그렇다고 피해의식에 젖어서 살 필요는
없지만....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고산 박물관의 日本輿圖는 말하지 못하는 독도의 아픔을
더욱 시리게 했다.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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