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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0)선지국/김식만


할머니집 커다란 솥에서
구수한 선지국이 끓고 있어
저녁 무렵이라 배도 고픈참에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지하상가는 장사가 잘 안되는지 업주가 수시로 바뀌기 일쑤인데 유독 두집만 굳세게 영업을 지속하고 있었다.
하나는 슈퍼마켓이고 또 한군데는 조그만 먹거리 가게였다.


슈퍼마켓이야 다양한 생필품을 파는 곳이니 그런대로 장사가 돼 버틴다 싶었지만 별볼일 없어 보이는 가게가 나름대로 유지되는 것이 신통하기만 했다.
커다란 솥과 도마겸 선반으로  쓰는 합판테이블이 전부인 2평도 채 안되어 보이는 작은 가게였다.
종업원도 없이 두툼한 솜이불같이 생기신 할머니가 혼자 일하고 계셨다.


커다란 얼굴은 항상 웃음이 담겨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도 넉넉하게 만드셨다.


하루는 퇴근길에 살것이 있어 슈퍼마켓에 들러 가려다 보니 그 할머니집 커다란 솥에서 구수한 선지국이 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녁 무렵이라 배도 고픈 참에 먹음직스러운 선지국에 눈길을 주고 있는데 쌀가마니같은 얼굴에 선지국만큼이나 구수한 웃음을 띠고 “한번 잡숴 보세요”라고 권하시는 할머니 말씀에 한봉지(3500원) 사들게 됐다.


집에 돌아와서 맛을 보니 그렇게 맛깔스러울 수가 없었다.
내가 먹어본 선지국중 으뜸이었다.


양도 푸짐해 우리 4식구가 먹고도 남아 다음날 아침까지도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그래서 그 다음날도 들러 선지국을 찾았더니 “선지국은 월요일만 하고 오늘은 찹쌀떡을 합니다."
“그래요, 그럼 내일은 다른 걸 하시나요?"


“내일은 우거지탕이지요."
그 후로 월요일만 되면 으레 선지국을 사들고 귀가하게 됐는데 슬슬 아내가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집사람도 음식솜씨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데 매번 월요일만 되면 선지국을 사들고 들어오니 은근히 부아가 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계속 사들고 왔더니 어느날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한다.
‘볼쌍사납게 저녁식사 시간에 선지국이나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다닌다고" 하도 뭐라고 그래서 한동안 할머니 가게를 들르지 않았다.


그러기를 서너달 됐을 즈음 을씨년스러운 어느날, 마침 월요일이라 마누라가 뭐라든 오늘은 선지국 맛을 좀 봐야겠다 싶어 할머니집에 들렀더니 할머니는 안 계시고 빈 솥만 덩그라니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오늘은 영업을 안하시나보다 하고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말을 건다.
“선지국 할머니가 돌아가셨대요."
“왜 돌아가셨대?"


‘고혈압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대요."
그때 허탈했던 내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아내도 선지국 사러 갔다가 얘기를 들었단다.
할머니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 뿐이었다.

 

김식만

-75년 서울치대 졸

-현)인천 김식만 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