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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1)아이들 앞에서/김재광

아이들 앞에서
오랜 시간이 흘러도
환자들에게 편안한

항상 같은 모습으로 기억되길…


나에겐 알토란 같은 딸이 셋이나 있다. 여기서 내가 ‘셋이나’라고 표현한 건 너무 많다는 뜻이 아닌 그만큼이라 좋다는 뜻이다.
솔직히 셋째 딸을 보았을 땐 내심 서운한 마음도 있었지만 유달리 씩씩하고 영리한 셋째아이를 키우며 지금은 언제 그런 마음이 들었냐싶게 마냥 예쁘고 사랑스러운게 사실이다.
성격도 제각각, 하는 짓도 제각각이라 아이 셋을 키우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건강하고 곱게 잘 자라 주어 감사할 뿐이다.


아빠라고 거의 매일, 이 일 저 일로 아이들이 다 잠든 후에 들어가기가 일쑤고 게다가 급하고 인내심 없는 성격 때문에 본의 아니게 아이들이 된서리를 맞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내 내게 사랑의 눈길을 주어 오히려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더구나 내 아이들은 나를 세상에서 최고의 아빠로 여겨준다.
그래서 이런 행복감에, 아버지가 된다는 건 큰 축복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아이들 앞에서 나는 내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자주 갖게 된다. 이런 점에서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고 하는가 보다.


어쨌든 인내심 없는 내 성격은 종종 환자를 대할때도 드러나곤 한다. 나름대로 많이 노력해 왔고 그래서 조금은 나아진 듯도 하지만 그게 어디 그리 쉽사리 고쳐 질 일일까. 특히, 나는 내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한다. 내 딴엔 꽤나 애를 썼다고 생각하는데 남들 눈에는 내 속에 있는 감정이 웬만큼 다 읽혀지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도 진료 마감 시간에 맞춰 들어오는 환자에게 피곤을 핑계로 기어이 싫은 내색을 하고야 말았다. 그것도 아주 모르는 사람이 아닌 평소 안면이 있던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그러고 나면 남는 건 항상 후회와 미안한 마음뿐인데….


영 편치 않은 심정으로 현관을 들어서는데 아이들은 달려와 안기며 입을 맞춰 반겨 주었다. (역시 내 아이들에게 만큼은 나는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그날 따라 눈이 내렸다. 그것도 우리 막내가 주먹에 꼭꼭 쥐어 작은 눈덩이를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첫 눈이…. 저녁나절, 음지에 겨우 남은 눈을 찾아 마냥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얼마전 만났던 어떤 딸과 아버지를 떠올렸다.


삼십이 다 되가는 딸들의 얼굴에는 굳이 주변 사람들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친밀함을 넉넉히 읽을 수 있었다.
나도 내 딸들에게 그냥 편한 친구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우리 환자들에게도 그런 의사가 돼야 하는데….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아무튼, 오랜 시간이 흘러도 환자들에게 그저 후덕하고 편안한, 그리고 변덕스럽지 않은 항상 같은 모습으로 기억된다면 좋겠는데….
이런 저런 생각에 한 해가 또 저물어 간다.

김재광

-94년 필리핀치대 졸

-현)광은 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