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도 사랑을 안주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치아에 대한 사랑을 가로막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드라마와 CF에 쓰여 귀에 익은 복음성가이다. 이 노랫말처럼 이 세상의 모두는 아마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을 것이다.
오후 진료 시작 - 챠트를 보니 2000년으로 시작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체어에 앉히는 것조차 힘이 든다. 사탕을 주겠다며 치과의사로서는 해서는 안될 말까지 해가며 달랬지만 실패. 밤새 아파서 울었다니 치료하기는 해야겠고, 안쓰럽기는 하지만 할 수 없이 개구기 물리고 온 스텝이 힘을 합쳐 치료를 해냈다. 사전동의를 얻었건만 부모의 표정이 안 좋다. 문득, 아기 부여잡고 치료했다가 3페이지나 되는 장문의 항의 편지를 받았다는 친구가 생각이 났다.
4시. 초등학교 여학생이 부모하고 왔는데, 6번치아가 뿌리만 겨우 남은 수준이다. 깜짝 놀라서 치료계획과 이 치아의 중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데, 부모는 치료비를 듣더니 (post & gold cr.) 꼭 그래야 되나요? 하며 시큰둥하다. 괜히 나만 호들갑을 떤 셈이 돼 버렸다.
퇴근하려는데, 할머니가 앞니가 솟고 아프시다고 왔다. x-ray를 보니 근관치료를 해야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치아를 갈지 말고 하잔다. 약해진다고... 15분간 설명하다 나도 지쳐서 나는 그런 재주 없다고 하니 그냥 나가신다. 나를 쳐다보는 표정이 썩 좋지 않다.
내 능력과 정성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는 하겠지만, 가끔씩은 이러저러한 환자들 때문에 힘이 들고 기운빠질 때가 있다. 환자들이 병원을 고르는 것처럼 나도 환자를 골라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은 든다. 물론, 의료인으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생각이기는 하다. 사실, 요즘같은 불경기에는 어쨌거나 환자가 와주기만 해도 고맙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던가. 환자는 미워해도(?) 치아는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게 우리의 운명이 아니던가. 사실 이 치아들의 운명도 참 여러가지다. 지나치게 열심히 잇솔질을 하는 주인을 만나 치경부 마모가 생긴 치아, 손상부위는 크지만 왕관(CROWN)으로 단단하게 보호되고 있는 치아, 자기 자리에 안 나고 제멋대로 자리를 잡더니 Wire를 잡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치아. 그래도 이 애들은 주인의 사랑을 받는 운이 좋은 치아들이다. 옆친구가 너무 빨리 세상을 뜨는 바람에 친구일까지 도맡아 힘들어 보이는 치아들이 있는가 하면 제대로 관리가 되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는 불쌍한 치아들도 있다.
이 사랑받지 못하는 불쌍한 놈들이 우리 치과의사들을 만나게 될 때는 어쩌면 이제는 사랑을 받을 수 있겠구나 하며 많은 기대감에 들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자기도 사랑을 안 주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이 치아들의 기대감을, 그리고 우리의 치아에 대한 사랑을 가로막는 자들로 있다.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포기하고 싶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말자. 우는 아이들은 한번 더 달래보고, 말이 안 통하는 환자들에게는 한번 더 이해시키도록 노력을 하자. 역경을 이겨낸 사랑이 더 아름답지 않은가.
2004년 이제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해 동안 주위의 사랑을 받아야 할 모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정성을 기울였나, 내일을 얼마나 사랑을 했나 생각을 해보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새해부터라도 이 아쉬움의 양이 줄어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해본다.
김의신
- 97년 원광치대 졸
- 현)김의신 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