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단 한번 뿐이기에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부딪히면서…
살면서 생각해본다. 지나온 시간들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기억 저편에는 아쉬움도 미련도 아픔도 그리고 기쁨도 배어 있다. 모든 것이 계획돼 있던 것처럼 그렇게 지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세상은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으로 진학 했을 때 모든 족쇄에서 풀려난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다. 갑갑한 새장에서 자유의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대학도 도피안은 아니었다. 더 큰 새장이었고 그 큰 새장은 커다란 중압감으로 다가왔었다.
졸업. 마침내 그 큰 새장을 벗어나 이제는 정말 자유로운 하늘에서 훨훨 날 수 있으리라 생각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산지 15년의 시간이 지났다. 헤어날 수 없는 반복의 굴레처럼 아직도 나는 새장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새가 돼 이젠 날 기력조차 없는 아니 나는 법을 잃어버린 새가 된 것은 아닐까?
어떤 인생도 나름대로의 의미는 있으리라. 과거의 기억들이, 그 모든 추억들이 얽혀서 현재의 나를 있게 했으리라. 깊게 패인 얼굴의 주름이 삶의 고뇌를 말해주고 듬성듬성해진 이마는 세월의 흐름을, 이젠 나도 늙어가고 있음을 인정하라는 것 일게다. 늙는다는 것은 자연의 순리, 나는 그것을 거스르지 못한다.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진대 조금은 슬퍼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이젠 더 빨리 흘러가는 시간과 더 빨리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성장을 멈춰버리고 싶은 늙은 아이가 된 것은 아닌지 삶의 권태로움은 나를 슬프게 한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좁은 진료실에서 이 우주의 어느 귀퉁이 좁디좁은 곳에서 나는 내 삶의 희노애락을 겪는다.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다. 모든 삶들은 저마다 이름을 가진 채 자신만의 기쁨과 자신만의 슬픔으로 짜여진 틀 속에서 끊임없는 반복을 거듭하면서 가뿐 숨을 몰아쉰다.
산다는 것은 어려운 거다. 변화 없는 삶이란 무덤과도 같은 적막뿐이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늙음이나 죽음이 아니다. 녹슨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법정스님은 말한다. 산다는 것 그것은 죽는다는 것의 다른 이름. 우리는 매시간 살면서 매시간 죽어가고 있다. 그렇다. 내가 두려워 할 것은 녹슨 삶인 것이다.
나는 새장을 내 마음속의 감옥으로 가지고 있었다. 저 새장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좀 더 나은 뭔가가 있겠지 하면서 나 스스로를 기만했던 것이다. 스스로를 결박하고 또 그러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삶의 방관자처럼 내 삶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가장자리에서만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삶은 단 한번 뿐이기에 이제 나는 내 삶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도 방관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들 속으로 나아가 그들과 함께 부딪히면서 내 삶이 녹슬지 않게 부단히 나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내 마음의 감옥 속에서 걸어 나오리라.
이제 내가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끝없는 욕망의 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나 자신을 비우지 못하고 항상 채우려고만 했던 지난날들을 이젠 비워가면서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언제나 함께 살아가고 싶다.
나의 교만과 급함을 겸손과 기다림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채우면서 남은 나의 생을 살아가리라.
최은석
- 90년 부산치대 졸
- 현)최은석 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