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이라도 눈물 지으며
감동이란걸 느끼게 해주는
세월의 고마움에…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내몸과 내동생 낳아주시고 사랑과 수고로 길러주시네!"
초등학교때 고무줄 선수였던 나. 어둑어둑 해져가는 운동장에서 넘어가는 해를 안타까워하며 수도 없이 부르며 넘었던 고무줄 노래다. 의미도 모르면서 목청높여 불렀다. 먼지뽀얀 얼굴에 땀으로 줄그어가며.
50줄 시작에 또 봄을 맞았다. 어느새 내게도 와버린 세월의 무게. 뭘로 보여줄까?
한심하고 슬픈거부터.
어느 날 문득 들여다본 거울속의 잔주름 가득한 얼굴과 흰머리. 왕년에 가뿐하게 달렸던 42.195km, 반도 못뛰어 헥헥댐.
기본만 했는데 땀으로 범벅된 도복(검도를 하고 있는데, 1시간 운동에서 겨우 10분). 9시 뉴스 다못보고 TV앞에서 꾸벅꾸벅 좀(내가 이럴줄은...)
환자가 15명만 넘어가면 아파오는 고개나 부얘지는 눈.
아이들에게 원성듣는 점점 커지는 말소리.
세상사 무심. 사소함에 목숨걸고 짜증내고 자주 삐짐.
여기저기 삐져나오는 나이살(?)들.
노안이 뭔지 몰랐던 시절(별로 오래 전이 아닌데 옛날 같다) 돋보기를 끼고 신문을 읽으며 밝은 세상을 본다는 남편을 비웃었고, 화일끝이나 에나멜바끝이 안보여 보조원에게 묻는다는 동기들. 절대 이해 못했는데..... 언제부턴가 엔도가 싫어짐(canal 입구가 부옇게 보이니까). 우식부위가 잘 안보이는 인접면 우식치료도 무지 힘듬. 애궂은 라이트만 탓하고(오래되서 조도가 떨어졌네?) 확대경을 제법 자주 쓰면서도 우김. 난 아직 아니라고!!
세월은 제나이 속도로 간다는걸 이해하는데는 별로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아, 시속 50km!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과 한참 이야기하다(말도 많아지더군)가만히 생각해 보면 옛날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예과때 어쩌구... 우리땐 어쩌구... 이젠 치대 들어가기도 힘들어... 빨리 나온게 어디 야... 공부도 더 힘들다며? 다행이야. 이미 꼰대(?)가 된거다. 저절로 되는거드라. 이 모든게 세월의 무게라면 어쩌겠어?
나이들어 서운하고 슬픈거만 있나?
다행인거.
예전보다 수그러든거(한 성질했다). 그리고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소중한 걸 찾아본다는거.
따스한 봄날, 진료실 창밖으로 한라산을 본다.
문득 20년전에 돌아가신 친정 어머니가 그리워 눈물 난다. 내 나이 50줄에야.... 어머니 나이 겨우 62세에 가셨는데.
어린시절 당신 아버지가 그리워 눈물짓던 어머니가 이해안돼 멀뚱했던 기억과 함께 생일날 악착같이 미역국을 끓여 먹으며 어머니를 생각한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노래 들어가면서. (뱃노래인지, 오돌또기인지?) 음식은 뭘좋아하셨나? 기억이 없어서 죄스럽고. 억지로 모습을 기억해내며 또 죄송하고 슬프고. 내 나이때 우리 어머닌 어떻게 사셨을까? 얼만큼 나이 든 모습이셨을까?
쥐꼬리 월급타시는 아버지만 바라보고 살지않는 강인한 제주여성의 전형이었겠지.
40에 낳은 막내와 언니 나 동생을 키우며 나보다 훨씬 힘들게 일하며 쉴틈없이 하루하루를 살았겠지. 힘들땐 어떻게 이겨냈을까? 자상하게 헤아려서 다독여주는 아버지도 아니셨고 이해한다고 나서는 딸들도 곁에 없었고. 변변한 친구도 없었고.
도대체 어떻게 사셨을까? .
궁핍한 생활을 살아내게 만드는 유일한 위로며 위안이며 삶의 목적인 아이들을 초등학생때 모두 서울로 보내고 긴긴 날들을 어찌 사셨을까?
난 딸을 20살이 돼 처음 서울로 보내고서 가슴이 아프고 섭섭하고 그랬었는데. 살아온 길을 잠시 돌아보면서 또는 나이가 들어 곤두박질치는 몸을 보며 무엇으로 위안을 하셨나? 자식이 모두 자기몫을 하게 키운거 하나로 위안이 됐을까? 자식모두를 의사로 길러주신거로 보상이 되셨을까? 자신의 인생을 찾아 각자 갈 길로 가버린 자식들인데... 희생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일생. 밥은 굶었지만 학비 걱정은 않게 하시려고 억척소리 들으시며 사셨던 우리의 어머니들. 어머니를 그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