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따라 인라인도 배워보며
아직은 젊다 자위해보지만
역시 허전하다…더 늦기전에
어릴적에 빨강머리 앤을 읽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세심한 아이었다면 앤이 길버트와 화해하는 ‘길모퉁이"를 기억할테고.
빨강머리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앤을 이해 못하는 남자들 전용의 무딘 신경을 가진 길버트는 단지 관심을 끌고자 한 ‘홍당무"란 한마디가 몇해를 그녀와 적대관계로 지내게 할 줄은 꿈도 못 꿨으리라.
그리고 몇 해 후, 그 아이들이 성인이 돼가는 어느날 비로소 마음을 여는 길모퉁이가 묘사된다.
그 책을 읽었던 초등학교 3학년 쯤엔 그 길모퉁이를 난 단지 집에서 좀 떨어진 골목길 어귀려니 했었다.
그런데. . . . 혹시 아시는지.
빨강머리 앤이 500페이지 정도 분량의 10권짜리 책이라는 걸.
루시모드 몽고메리가 30살인 1904년 봄에 쓰기 시작해 65세인 1939년까지 자그마치 35년에 걸쳐 쓴 책인데 17개 언어로 옮겨져 그토록 전세계에 팔려 나가고 영화·연극·뮤지컬·발레 로도 공연된 작품이 우리나라에선 2002년 1월 1일에 겨우 완역돼 발간됐다는 걸.
그래서 우리들이 어린시절에 읽었던 앤은 겨우 그 소설의 1/10 분량이며 도입부인 ‘만남’이었고, 우리가 아는 앤과 길버트의 화해는 이야기의 종결이 아니라 시작이라는걸.
지금이라도(어느 나이에도 불구하고) 모드 그녀가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섬의 아름다운 자연에 그녀 닮은 앤을 참으로 아름답게 승화시킨 글을 읽다보면 마음이 훈훈해지고 기운이 북돋아 지는걸 느낄수 있으리라. 이런, 서론이 너무 길어졌군.
난 단지 앤에서 나오는 ‘길모퉁이’가 초등 3년 여자아이가 해석한 골목어귀 어디쯤이 아니라, 살다보면 몇번이고 마주치는 삶의 전환점이라는걸 서른 아홉이 돼서야 알았다고 고백하려 했을 뿐인데.
그래서 루시모드의 길모퉁이는 아홉수를 넘기려 끙끙대며 애쓰는 나의 "요즈음"을 슬쩍 담고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열아홉엔 스물이 기다려졌었는데,
스물아홉엔 중년이 돼가는 기분에 왠지 나이가 징그러울 뿐이었는데, 서른 아홉엔 정말이지, 나이는 딱 여기까지만 먹고 싶을 뿐이다.
더이상 난 나이를 먹지 않고 살련다.
적어도 이 글을 읽은 모든 선생님들은 앞으로 5년 후에라도 난 서른아홉이라는걸 기억해 주셨음 좋겠다.
마흔아홉, 쉰아홉, 예순아홉엔 그 나이란 녀석이 좀더 큰 중압감으로 날 짓누를 테니.
설날 아침 떡국을 먹고나서부터 아홉수를 넘기려 뭘 해야되나 싱숭생숭했었다.
더 늦기전에 애인(?)이라도 한번 사귀어볼까, 더 늦기 전에 애를 하나 더 낳을까?(난 지금 딸하나, 아들 둘을 갖고있다).... 하다가 영어회화 학원에 발 들인지 석달째이다.
그러나 아직 아홉수를 넘기기엔 너무 허전하다.
그래서 애들따라 뒤뚱뒤뚱 인라인도 배워보며 아직은 젊은쪽이다 애써 자위해보지만 역시 허전하다. 더 늦기전에 implant를 들어야만 하겠다. 좀 쉬운곳으로 누군가 추천해 주시길 바란다.
이러다 보면 나의 서른아홉 길 모퉁이는 아마도 훌륭하게 돌아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조정미
- 92년 전남치대 졸
- 현)서울 나래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