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실천으로 늘 쾌활하며
머리에 흰서리가 소복이 앉을때
삶의 아름다움과 희망에 대해…
붉은 장미가 초록잎사이로 화사한 얼굴을 내미는 향그러운 오월이 되면, 백화점과 쇼핑몰에는 누군가를 위한 선물을 장만하려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주위의 친구나 동기들을 보면 어버이날 즈음이 분주한데, 나는 스승의 날에 더욱 바빠진다. 부모님은 네분이 계시지만 감사의 뜻을 전해드리고 싶은 나의 선생님들이 더 많은 까닭이다. 요즘 ‘선생은 있어도 스승은 없고 학생은 있어도 제자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겐 카네이션을 한아름 안겨 드리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초등학교 6학년때 담임을 맡으셨던 분은, 몇해 전 퇴직을 하시고 부산근교에서 자연을 벗삼아 지내고 계신다.
내가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줄곧 같은 동네 같은 곳에 사신다.
최근 옛집을 헐어 아담한 집을 새로 지으셨다. 일년에 한 두번 시간을 내어 그 작고 정겨운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마음이 푸근해 진다. 마을이름이 새겨진 입석에서 선생님의 잔잔한 미소와 나즈막한 음성을 느낀다. 바쁜데 뭐하러 예까지 왔냐고, 잔소리아닌 잔소리를 하시며 반갑게 맞아 주시는 선생님.
“많이 바쁘지?"하시면서도 술술 풀려나오는 바구니속의 실타래처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선생님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정겨운 이야기를 나눌때면, 초록빛 찻잔 속에 어린 나와 주름 없는 검은 머리의 선생님이 있다. 한시간남짓 머무르다 서두르는 기색을 애써 감추고 또 연락드리겠노라며 돌아서면, 선생님이 들려주신 이야기의 실타래는 내 발목에 와서 휘감겨 따라 나선다. 어린시절, 스스로를 충분이 성장했다 여기고 자신만의 세계를 인정받고 싶어했던 나.
그런 나의 설익은 고집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오히려 격려의 손길로 내 어깨를 두드려 주신 선생님에게서, 방과 후에 나는 서예를 배웠고 타인에 대한 사려깊은 배려와 인내심을 배웠다.
그러고 보면 난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스승을 가졌기 때문이다. 서른 다섯해 가까이 살아오는 동안 한결같이 희망과 사랑을 보여주신 부모님은 내 생애 최고의 스승이다. 든든한 기둥으로 내 곁을 지켜주는 항상심의 소유자인 남편이 나의 스승이고, 초롱초롱한 눈빛과 투명한 미소로 이기심으로 풋내나는 내 마음을 익혀주는 두 아이들이 그러하다. 또한 많은 가르침을 주신 학교선생님과 교수님들, 한국치과교정연구회 선생님들,
늘 가까이서 시시콜콜 내 얘기에 귀 기울여 주는 나의 선배, 벗들이 내 스승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나에게 크고 작은 어려움으로 부딪혀와 악연(?)을 맺게된 이들도 빼놓을 수 없겠다. 난관을 마주할 때면 이전에 내가 알지 못하던 세상살이의 이치를 하나 하나씩 반 강제적으로 깨쳐 갔으며, 겸손해 졌으며, 동시에 강인해 졌다.
나를 성숙시킨 것이 사랑이라면, 나를 단련시킨 것은 크고 작은 시련이었다. 그 당시에는 외면하고픈 마음뿐이나, 얼마 지나고 보면 억울함도 덜어지고 내손에 남은 작은 깨달음을 확인하는 순간, 세상살이에 공짜는 없다며 슬며시 미소짓게 된다.
나는 소망한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삶에 대한 배움과 새로운 만남으로 설레어 가슴이 뛰기를.
그 배움의 실천으로 늘 쾌활하며 분주하기를. 그리하여 머리에 흰서리가 소복이 앉을 때, 환하게 빛나는 미소로 젊은이와 아이들에게 삶의 아름다움과 희망에 대해 노래할 수 있기를. 내가 즐겨 암송하는, 지그지글러의 ‘당신은 정상에 서 있습니다’를 나의 소중한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당신의 과거와 친구가 되고 당신의 촛점이 현재에 맞춰져 있으며 미래에 대해 낙관할 때, 당신은 정상에 서 있습니다.
당신의 적들과 친구가 되고 당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로 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을 때, 당신은 정상에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