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보다
들리는 것 보다
무섭고 애절한 것은…
때는 점심시간, 시장 한 귀퉁이에 조심스럽게 위치해 있는 작은 공방을 향해 난 걸어갔어. 너무 가까이 있는 곳이라 싱거울 정도의 발걸음만으로도 충분히 그 곳에 도착하지. 그 곳에는 한 두 명의 아줌마들이 늘 앉아 있어. 40대 후반이 대부분이고 공방의 주인 역시 40대의 아줌마야. 요리를 좋아하고 남편을 사랑하다 보니 밤 늦은 시간까지 남편의 야식을 준비하다가, 맛을 보다가, 술에 취해 일찍 잠들어 버린 남편을 원망하며 그 야식을 먹다가, 70키로가 넘는 거구로 인생을 조금씩 망쳐 왔다고 말하는 그 공방주인은 장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 작은 잡담그룹도 공방의 인테리어 소품처럼 만들 수 있는 능력의 여자야. 그녀의 가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게 밖, 세상에서 장치했던 무기를 하나 씩 벗어내듯 무장해제를 하는 듯 느끼질 때가 많지. 그점이 내가 그 공방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말이야.
그날은 살사댄스를 느즈막히 시작했다는 한 아줌마가 반갑게 나를 맞아 주었어. 그녀는 약간의 비음이 섞인 서울 말씨를 쓰는 사람인데 옷매무새가 늘 단정하고 방금 골프를 치고 나왔거나 치러 가기 전의 인상을 주는 사람이야. 그녀는 책읽기를 좋아해서 신간서적에 대한 소개나 여성의 성을 다루는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편이지. 그녀 자리 옆에 몸을 걸치고 인사치례로 말을 건냈어. “전 번 이야기 재미있던데요. 그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 말이예요.” “ 호, 호 그랬어요.”
그 칭찬은 그녀의 입에서 또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다린다는 신호임을 그녀도 알았는지 이야기 한 편을 또 해주더군. 70 또는 80년 전 이라나 가까운 마을에 김지미를 떨게 할 만큼 아름다운 여자가 살았다는군. 그녀가 아직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 남편이 감나무에서 떨어져 반신불구가 되면서 그녀의 운명은 예고 된 듯한 복잡 기구한 인생을 살기 시작했데. 남편을 병원에 실고 갈 유일한 수단인 리어카를 구하기 위해 옆집 아저씨와 묘한 거래를 하면서부터 그녀는 보편적인 삶에서 비껴서기 시작했는데 리어카 주인 아저씨와의 관계에서 아이가 하나 생기고, 남편을 돌봐준 의사 선생과의 사이에 아이가 둘 생기고, 동네에 들어오는 우체부 아저씨와 또 일이 생기고, 그녀의 의도 였는지 그녀의 아름다움이 뿜어낸 독 때문이었는지 그녀는 그 복잡한 삶 속에서 씨다른 아이들을 많이도 낳았다는군.
그 씨 다른 아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애비 손에 돌아가고 남편과의 사이에 난 딸 만 그 어미 곁을 지켰는데 딸이 그녀를 떠나지 않았던 이유가 자신의 어미에 대한 증오였다나 뭐라나. 중간 중간 멋있는 지문을 넣어 주면서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었어. 그 딸이 자라 어떻게 됐냐고? 딸은 동네사람들의 손가락질 속에서도 꿋꿋이 자라 서울의 모 여대 약대를 나와서 잘 살고 있었다는데 그러던 어느 날, 딸은 고향으로 돌아가 과거의 설움을 복수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혀 고향으로 내려왔다는군( 이 대목은 정말 나를 웃겼어. 사실을 확인하기가 정말 난해한 부분 아니야? ) 한 동안은 정말 뻔듯한 약국을 차리고 돈 많이 벌면서 동네 사람들의 부러움을 즐기고 살았다는 군.
하지만 그녀의 운명 역시 그녀의 어머니와 빼 닮은 외모처럼 순조롭기는 예초에 걸러먹었는지 남편을 남부끄러운 사건으로 잃고 자신은 동네 어느 분과 부인도 첩도 아닌 위치에서 20년을 관계하며 살다가 그 남자가 자신을 떠나 버리자 그 집에 가서 패악을 치며 소란을 피웠다나 뭐라나…. 그런데 그녀의 아들들 조차 어머니와 그 남자의 관계를 인정하고 어머니 편에 서 있었다는군.
환갑에 가까운 나이로 홀로 남겨진 그녀는 전설처럼 기묘한 긴 이야기의 꼬리를 드리우고 가끔은 해질 녘 손님없는 약국의 한 귀퉁이에서 시를 적고 있다나 뭐라나 ..., 최소한 이야기를 전하는 그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는군.
이야기가 끝나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녀의 얼굴을 각자 상상하면서 묵념이라도 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