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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시간이 흘러가면/ 권병환

 

 

내가 만일 어린 소년이었다면
국화꽃처럼 아름다운 부인께
전화를 걸어 얘기하고 싶다

 

며칠 전에 나는 아름다운 어느 중년의 부인으로부터 애틋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우연히 전해 듣게 됐다. 선망의 대상으로만 보일 듯한 부인에게도 그런 아쉬운 기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게 쉽게 납득되지는 않았다. 학창시절에 누구나가 한번쯤은 경험해 본 청춘남녀의 사랑이야기. 지금은 진부해 보이기만 한 옛사랑에 대한 추억일 뿐인데 며칠동안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은 가슴 찔리는 결말 부분 때문이었다. 그때 그 시절 젊다는 한가지의 특권만으로 얼마나 왕성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었겠는가.


이성간이든 우정이든 사회적인 문제든 언제나 격렬했고 그만큼 진지했고 간절했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세대(나는 80학번이다)는 대학 들어가자마자 대통령 욕하고 정부반대하고 데모부터 했다. 79년의 10.26과 80년 민주화의 봄, 혼란과 갈등이 각계각층에서 분출되던 때였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그때의 광주에서의 슬픈 역사는 몇 번의 정권이 바꿔서 이제 어떤 이름으로 자리 매김을 하였는지는 몰라도 (저는 정치 사회에 너무 문외한이라서 용서를 구함) 갓 들어온 대학교 초년 생의 눈에는 너무나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었다. 그때의 고교시절이란 게 뻔하지 않는가. 오로지 입시를 위해서 하루 웬 종일 교실에서 아니면 도서관에서 명문대학을 가기 위해 매달리는 시절이었다. 그런 속박과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대학에 왔을 땐 좀 여유 있게 휴식도 갖고 여행도 하며 대학의 낭만이란 걸 한번 만끽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꿈은 말 그대로 바람이고 소망일 뿐이고 부산에서 자란 나는 시골학생이라는 명찰을 달고 하숙집을 전전하며 집시 아닌 집시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대학의 축제는 대동제니 뭐니 하면서 시위로 시작해서 시위로 끝났다. 휴교령 때문에 원도 한도 없이 놀았지만 이렇게 대학이 사회적인 이슈에 민감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나 같은 치과대학생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해야 하는 듯 했고 그래야지 뭔가 떳떳한 느낌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나 같은 의식도 지식도 없는 시골학생이 무슨 도움이 됐겠는가.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었고 한쪽으로만 몰아가는 핵심을 이해하고 싶어서 토론도 하고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회서적을 뒤적거리기도 했다.


그 후로 2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이 흘렀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시위대의 앞에서 식칼 들고 독재타도를 외치며 같은 연배의 친구였을 경찰들에게 잡혀 사라진 나의 선배와 친구와 후배들은 그들의 소망이 이뤄져 가고 있는지. 아니면 나처럼 감당할 수 없는 생각의 무게를 못 이겨 사회적인 현상과 무관하게 그냥 자기스타일로 살아가는지. 그토록 발부둥치며 시간을 보냈던 부조리와 부패가 다 없어졌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또 다른 부패와 청산을 위해 이런 일을 저렇게 해야 한다면 불혹의 나이도 넘어버린 나에게는 이미 설득력을 잃었다. 지난 시간들 속에 나를 애타게 혹은 갈증으로 인해 불면의 밤을 보내게 했던 것은 사회적인 이슈도 아니었고 민주화를 위한 갈망도 아니었고 부정에 대한 반항도 아니었다.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그래서 속상하고 상처 받았던 보잘것 없는 사소한 기억들이었다. 어린 소년과 소녀가 만나서 아낌없이 사랑하고 영원함을 약속하다 한마디 얘기도 없이 사라져 버린 소년을 놀람과 미움과 원망과 아쉬움으로 바라보다가 상처 받은 자존심, 자괴감, 잊혀짐, 또다른 성숙으로 전개됐던 슬픈 사랑의 결말부분. 사연의 끝이 어찌됐던 나는 가슴이 찔렸다.

 

내가 그래서가 아니고 혹시 자신도 모르게 남을 상처주고 돌아서는 일들이 있지는 않았나해서 그래서 본의 아니게 여린 가슴의 순수함을 해치지 않았을까 해서. 보잘 것 없이 보이는 것들도 생각보다 더 큰 의미와 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중년이 된 지금 다시 한번 마음으로 새겨본다. 내가 만일 그 어린 소년이었다면 국화꽃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