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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맛있는 시간/박지원

 


무엇보다도 더 중요하게
밥때를 챙기곤 했던 것 같다
공부하느라 받는 스트레스는…


얼마 전에 모교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지금 이맘때면 형형색색의 온갖 물감으로 아름답게 물들어 있을 교정을 그저 스쳐 가는 눈길 한번 주고는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덜컹거리는 전철 안에서 내 생각은 10여 년 전의 학창시절로 달려가고 있었다. 국가고시 준비로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강의실과 도서관에서 생활해오던 그 때로.
늘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일곱 명이 있었다. 그것도 모두 여성동지들로만.
우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후 5시가 되면 소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학교 앞 여러 분식집들을 헤메고 다니곤 했다.


저녁 한끼를 먹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지만 그 시간만큼은 음식 맛보다 더 맛있는 시간으로 우리는 만들어 갔다. 여학생들의 뜻 없는 수다라고 표현할 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어떤 이해관계도 끼어들 수 없는 우리들만의 시간.
매일 만나는 친구들끼리 무슨 화제가 그렇게 많았던 것일까? 우리들은 밥을 먹는게 아니라 우정과 사랑을 나눠 먹으면서 쌓여있던 고민들을 모두 표출해 버렸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도 본과 4학년 생활이 힘들고 고생스러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들의 맛있는 저녁식사 시간이 하루종일 지쳐있던 몸과 마음을 다스려주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지로 가득차게 만들어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가끔씩 에너지 소모가 너무 많았던 날은 꼭 야식을 먹고나서 헤어지곤 했다.
야식만은 어느곳으로 가자고 얘기하지 않고 늘 정해진 곳으로만 갔다. 아주머니 자매가 운영하시던 탕수떡볶이집으로... 물론 그 다음날은 누군가 한명은 꼭 팅팅 부은 얼굴을 하고 나타나곤 했지만 우리들은 그저 한번 크게 웃고서는 지난 시간의 맛있던 추억을 떠올리기만 할 뿐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다른 그 무엇보다도 더 중요하게 밥때를 챙기곤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공부하느라 받은 스트레스는 별게 아닌 것으로 우리들의 이차적인 문제가 돼 버렸던 것 같다.


이제는 졸업 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진료를 하고있을 일곱명의 친구들과 그 맛있었던 시간을 그리워하고 싶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한번씩 모일때면 우리의 맛있는 시간을 통해 진료현장에서 경험하는 고민들을 모두 털어버릴 수 있는 활력소가 되는 그 시간을... 네모난 진료실안에서 하루종일 혼자서 싸움하는 홀로되는 시간 가운데 나의 허전함을 달래줄 또 다른 추억을 떠 올릴 그 때를... .
아마도 그때 학교 교정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던 이유가 그 친구들과 같이 추억을 나누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친구들아 우리 밥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