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그림 같은 풍경은 내 눈 속에 녹아 들어갔고,
나의 존재는 그 풍경 속에 녹아 내렸다.
유난히도 눈이 많았던 겨울도 훌쩍 떠나 버리고 따스함이 온몸을 감싸주는 봄이 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벚꽃이 만발한 진해에는 많은 사람들이 꽃들의 뽐냄을 보러 사방각지에서 찾아 들고 있다.
따스한 시내의 골목부터 피기 시작한 벚꽃은 점차 산등성이 쪽으로 그 기운을 펼쳐 나가다가 일주일이 지나면 다시 피었던 순서대로 지기 시작하고, 꽃이 지면 기다렸다는 듯 연녹색의 조그마한 잎사귀들이 어느 샌가 온 나무를 감싸 안는다.
이런 과정은 매년 비슷한 시기에 항상 같은 모습으로 되풀이된다. 나는 매년 이때가 되면 출퇴근길에 일부러 시내의 작은 골목들과, 장복산을 넘나들며 꽃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새로운 감상에 젖어 들곤 한다. 벌써 10년 이상 벚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지켜보았지만 느끼는 감흥은 매번 새롭고 경이롭다.
겨울의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속에서 다소곳이 때를 기다리는 꽃망울의 모습, 흐드러지게 활짝 핀 꽃들의 빛나는 모습, 한 둘 씩 떨어지던 꽃잎들이 흰 눈꽃이 되어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 포장도로 위를 분홍색으로 물들이며 떼지어 굴러다니는 꽃잎들의 장난스런 모습, 꽃잎이 다 떨어져 나간 가지위로 파란 잎사귀들이 봉긋 고개를 내미는 모습 등 매 순간이 모두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몇 해 전 이슬비가 촉촉히 내려앉던 인적 드문 늦은 밤, 나는 그 전에는 목격하지 못했던 기막히게 멋진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따스한 햇살과 많은 인파로 낮 동안 한껏 달구어 졌던 아스팔트는 밤의 갑작스런 이슬비로 자신의 열기를, 아물거리는 아지랑이 안개로 변모시켜 허공으로 내뿜고 있었다. 떨어진 연분홍의 꽃잎들은 검은 아스팔트 바닥 위를 여러 가지 모양의 모자이크로 수놓았고, 허공에는 안개비가, 바닥에는 뭉게뭉게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그 공간 속으로는 간간히 꽃잎들이 조용히 흩날리고 있었고, 나는 그 안을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꽃인지 꽃이 나인지....
그 그림 같은 풍경은 내 눈 속에 녹아 들어갔고, 나의 존재는 그 풍경 속에 녹아 내렸다. 녹아 내린 내가 안개의 일부가 되어 꽃들 사이로 하늘하늘 춤을 추며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간혹 지나가는 차들의 불빛 속에 더욱 짙어지는 내 모습은 지나간 차 뒤에서 너울너울 흩날리며 검은 밤하늘로 날아오른다.
낮에도 들러보았던 이곳이 지금 이토록 환상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질 않는다. ‘이 광경과 이 느낌을 내일 또 경험할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기며 그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는데 아쉽게도 그 이후 그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벚꽃은 꽃 한송이 보다는 한 나무에 다닥다닥 모여있는 꽃무더기가 보기 좋고, 한 그루의 나무만 우뚝 서있는 것보다는 여러 그루가 한데 모여 꽃길을 이루고 있는 것이 더더욱 보기 좋다.
진해 군항제가 열리면, 축제가 시작되기 전부터 시작하여 축제가 끝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진해의 여러 곳에서 벚꽃을 보고 돌아간다.
그들은 나름대로 벚꽃을 보았다고 생각하여 자신들의 감흥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전할 것이다.
너무 이르거나 늦은 시기에 왔던 사람들은 ‘소문만 요란하지 별것이 아니었다’고 할 것이며, 알맞은 시기에 보았던 사람들은 ‘소문만큼 화려했다" ‘밤 벚꽃이 정말 일품이었다’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빛을 뿜어내는 꽃무리가 정말 신비했다‘서울의 여의도나 창경원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등등 자신이 보았던 제한된 시간과 제한된 장소에서의 경험에 따른 느낌대로 군항제와 벚꽃을 평가하고 정의 내릴 것이다.
다양한 장소에서 다른 시각에 관찰하였기에 모두의 느낌이 같을 수 없음을 이해하지만 전체와 비교하여 극히 일부분만을 보았을 뿐인데, 전체를 다 아는 듯 결정해 버리는 이들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산과 도로변 개천가 등 모든 곳에서, 꽃망울이 생겨날 때부터 잎이 떨어질 때까지 꽃들이 만들어 내는 모든 자태를 새벽, 낮, 밤으로 지켜 볼 수만 있다면 이들에게도 벚꽃이 주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진정 기쁨으로 느낄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지련만.....
일단 벚꽃의 그 아름다움을 한번 경험하고 나면, 동장군이 좀체 물러설 것 같아 보이지 않는 해에도 벚나무에 조심스레 고개를 내미는 꽃망울을 보며 아무리 늦어도 4월이면 어김없이 봄이 올 것을 예견하여 마음 느긋해할 수 있으며, 찌는 듯한 햇볕 속에서 녹아 내릴 듯한 아스팔트 위를 걸으면서도 내년 봄 이 길 위에 벚꽃잎들이 장난스레 뒹굴 날을 떠올리며 더위를 달랠 수 있다.
봄에 꽃을 피워내기 위해 일년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단지 5일간 꽃을 피워 만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