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이냐 취직이냐
선택의 기로가
또다른 인생의 시작점
한참 되었던 것 같은데, TV프로그램 중에 이휘재 씨가 두 가지 길 중에 한 가지를 택하면 그 선택으로 인해 너무나 다른 삶을 살게된다는 포맷의 ‘인생극장’이라는 것이 있었다. 실제 생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두 가지 경우의 결말을 모두 볼 수 있었다는 게 아마도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 아니었나 싶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런 중요한 선택의 기로가 나에게도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미리 그 선택의 결말을 말한다면, 지금 나는 제대를 앞둔 말년차 군의관이다.
13년 전 학력고사를 보고, 6년의 치대 생활과 국시를 통과하고 보철과 4년, 군의관 대위로 3년을 보냈으니 그때 그 선택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면, 15년전 늦가을이다.
당시의 나는 격동의 91년, 새내기 대학생으로 많은 고민과 경험을 했던 환경공학과 1학년이었다. 사실 공부보다는 친구와 서울에서의 새로운 대학 생활이 더 좋았던 시절이라서 전공과 내 미래에 대한 생각은 부족했었다. 2학기 들어 전공 입문을 공부하게 되면서 환경공학이라는 학문이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91년에는 두산에서 낙동강에 페놀을 방류해서 일반인들의 환경오염에 대한 관심이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사건에 못지 않았었다.
원래 고집이 센 편은 아닌데, 그때는 왜 그렇게 ‘이건 아니다’라는 확신이 들었는지…
중간고사가 끝나갈 무렵 가장 친했던 친구와 공부하다가, 잠깐 커피 마시러 나와 앉은 공학관 앞 계단에서 내 이런 엉뚱한 결심을 상담하게 되었고, 그 친구는 자기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면서 맞장구를 치며 열심히 해보라고 했다.
당사자야 본인 일이니까 그렇게 쉽게 결정하고 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부모님의 황당함은 얼마나 크셨을까? 지금에서야 짐작하는 것이지만, 부모님께서는 그 당시에 정말 많이 놀라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기술직 공무원이셔서 밑으로 기술고시 출신 직원들이 많이 계셨다. 그분들을 통해 환경공학이 미래의 학문이라며 회유를 하셨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겨울 기말고사가 끝나고 난 후부터 고향에 내려와 대입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대입을 위한 학원생활이야 뻔한 모습이니 생략…
치대를 가기 위해 시작했던 재수는 아니었지만, 어찌어찌해서 우여곡절 끝에 선택하게 된 치의예과, 그리고 치대를 가기 위해서 시작된 객지 생활이 올해로 14년째이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군 복무를 위해 다시 서울로…
그 동안 치대 생활과 병원 수련, 결혼, 군 입대, 예쁜 우리 딸과의 만남 등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오늘처럼 15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 그 때를 기억하게 되는 것은 이 모든 일의 시작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15년이라는 시간동안, 나는 치과의사로 새로 태어나 살게 되었다. 치과와 관련된 여러 사람들, 환자들과 만나면서 직업적인 행복감, 어려움도 느꼈고, 이제는 어렴풋이 치과의사가 내 천직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그리고, 지금은 제대를 앞둔 군의관으로서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궁금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는 시점이다. 제대 후, 개원이냐 취직이냐 하는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내려야만 하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오래 살아본 경험은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인생이란 수많은 선택상황들의 연속으로, 그때마다 여러 가지 결정을 해야만 하고, 그로 인해 좋은 일도, 후회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매순간 심사숙고하고, 최선을 다하며 사는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든다.
1991년 10월, 그때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2006년 여기 이곳에 지금 이 모습으로 서있을 수 있을까?
김 영 일
·99년 부산치대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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