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내달 29일 제55차 치협 총회를 앞두고 치과계 원로로서 치과 발전과 역사를 함께 해온 치협 고문들을 차례로 만나 그동안의 근황과 치과계에 대한 조언을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첫 인터뷰는 지난 57년부터 2001년 5월 현직에서 물러나기까지 44년간을 치과계 발전을 위해 몸담아 온 김인철 치협 고문을 만나 은퇴 후 근황 및 과거, 현재, 미래 치과계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건강 유지 비결은 ‘무욕심’
후배들 고민 함께 나누고파
자신감 갖고 힘있게 살아가길
“내나이 이제 벌써 여든이야”라며 운을 땐 김인철 고문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했다.
현재 김 고문은 2년여전부터 천안의 모 치과에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나가 후배들에게 오랜 치과경험을 나눠주고 있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지인들과 낚시를 즐기며 보내고 있다.
먼저 건강유지 비결에 대해 묻자 김 고문은 “한마디로 말해서 ‘무욕심’이라고 얘기하고 싶어. 5년전 현직에서 은퇴할 때도 그랬지만 사람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건강할 때 치과의원을 그만 두는 것이 좋아. 과욕 부릴 필요없이 일에 대해 미련을 안 가지는 것이 건강유지의 비결이라고 할까. 식탁에 맛있는 음식이 많으면 더 먹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지만 더 먹으면 탈이 나거든.”
실제로 김 고문은 지난 76년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서울치대 교수직을 미련없이 떠났으며, 치협 회장에 올랐을 때도 단임하겠다고 먼저 강조했으며, 연임이 확실시됐던 경희치대 학장직도 미련없이 벗어 던졌다. 모두 주위의 만류가 심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가 현직에 있을 때 치과계에 남긴 공적은 셀 수 없이 많다. 57년부터 19년간 서울치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에는 의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의료환경이 빈약했던 치과환경 개선에 누구보다 앞장섰으며, 74년에는 개원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공직지부를 설립해 초대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또 76년 협회장 시절에는 ‘설탕 덜 먹기 운동’을 펼쳐 전국 순회 계몽활동을 하는 등 대국민 홍보효과를 극대화 시켰을 뿐 아니라 협회회관 1·2층에 새마을 진료원을 개원해 어려운 영세민들을 대상으로 무료진료를 펼쳐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설탕 덜 먹기 운동은 당시 윤흥렬 치협 공보이사의 제안으로 시작됐는데 이 운동은 그때 54만명이라는 대규모 회원을 가지고 있던 주부클럽과 연계해 전국을 방문하며 강연 등 계몽활동을 펼쳐 대국민 홍보효과는 물론 치과의사에 대한 이미지도 크게 높였다고 생각해.”
또한 김 고문은 협회내 새마을 진료원에서의 무료진료 실시와 관련해서도 “처음엔 회원들의 반대가 적지 않았어. 그 시절 협회 재정도 어려울 뿐 아니라 진료할 치과의사 확보도 문제였지. 그래서 나를 포함해 뜻있는 분들이 십시일반 모아 의료장비 마련에는 성공했으나 진료할 치과의사 확보가 또 문제였어. 할 수 없이 당시 서울지부에 적극적인 협조를 구해 매일 4명(오전, 오후 각 2명씩 진료)씩 돌아가며 진료를 실시해 협회장 임기동안 무려 2000여명의 영세민들을 돌볼 수 있었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처음엔 일부 불만도 있었으나 치과의사를 비롯해 기공사, 치위생사, 업계 등 덴탈 패밀리들의 도움으로 잘 진행됐어. 어느 순간 무료진료가 정착되자 기본 진료외 보철치료 등을 요하는 환자들도 본인 치과에서 끝까지 무료로 마무리해주는 회원까지 생기는 등 회원들에게도 반응이 좋았지. 보람도 느끼고... 물론 정부와 시민들의 반응도 대단했지.”
이어 김 고문은 협회장에서 물러나자마자 경희치대 학장직을 맡았다. 3번 연임하면서 그 당시 낡은 의료장비, 시설 등 낙후된 치대 환경을 현대적으로 개선해 갔으며, 이외에도 교수진 증원, 대학원 정원 확대, 경희치대병원 부지 확보 등 치대를 경희대 간판 대학으로 부상시켰다.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졸업정원제로 바뀌면서 대학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