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것은
삶의 여유가 생긴다는 것
그래서 지금의 내 모습이 좋다
치과대학을 갓 졸업한 당시에는 모든 것이 어설펐다. 학부에서 배운 지식은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고, 임상경험도 원내생과 무의촌 진료뿐이어서 환자를 볼 때면 진땀이 나곤 했다.
교수님과 선배의 지도없이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도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당시의 내 용모가 갸날퍼서 환자로부터 “선생님, 그 팔 힘으로 이를 뺄 수 있습니까?”하는 걱정을 듣곤 했다.
임상경험도 절실했지만, 우선 빨리 어린 티를 벗어버리고 싶었다. 하얀 까운이 어울리게 노숙해 보이고자 안경도 중후한 것을 쓰고, 옷도 정장을 입었다. 나의 20대는 그렇게 나이가 빨리 들어 보이고 싶어 궁리하며 보냈다.
30대에는 치과의사가 내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힘들어 하기도 했고 임상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그 해결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금요일 일과 후 밤 12시경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면, 아직 캄캄한 새벽 5시 30분경이고 지하철로 교대역에 도착해도 어둑어둑했다.
인근에 있는 공중목욕탕에서 잠시 쉰 다음 세미나를 들었다. 그 당시 존경하는 고석훈 선생님께서 개설한 강좌로, 오전 8시에서 오후 6시까지 강의와 실습이 진행되는데, 지금은 무너져버린 삼풍백화점에서 잠깐 쉬는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강행군이었고, 강의가 끝나면 바로 역이나 터미널로 가서 집으로 귀가하는 생활를 2년간 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열심히 공부를 했다. 나도 의사다운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뿌듯함이라고나 할까? 배운대로 임상에 적용했을 때 더 나은 결과가 나오면 기뻤다. 물론 배운 지식과는 달리 손끝으로 활용이 잘 안 될 때는 의기소침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의 열정과 젊음이 지금은 추억이 되는 나이가 되었다.
40대가 되었다. 이제는 내가 지닌 한계에 대해서 조바심을 내지 않는 여유가 다소 생겼다. 40세는 불혹의 나이라고들 하는데 그래서일까? 나에게 있어서의 불혹을 잠깐 정리하면…
만약 내가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한다면, 나이나 중요하지 않은 조건에 흔들리지 않을 것!
만약 내가 어떤 일을 성심껏 했다면, 어떤 결과나 평가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을 것!
만약 내가 어떤 일을 해야만 한다면, 게으름이나 핑계에 흔들리지 않을 것!
대략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 가려한다. 남아 있는 50대와 그 이후에도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나이가 든다고 하는 것은 조금의 여유와 좀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삶에 대한 관조(?)를 약간 하게 되었단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이가 든 지금의 내 모습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날의 나와는 달리 자신만만하고 거침없는 젊은 치과선생님을 보면 놀랍기도 하면서 부럽다.
또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강좌 등 좋은 여러 여건도 부럽다. 그 부러움이야 어떡하겠는가? 그저 마음 한켠에 살짝 치워 놓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