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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9)행 복/오승교


정상인에서 장애인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내 인생이 달라지고 있다

 


어? 지금 여기가 어디지? 내가 죽은 거야? 살아 있는 거야? 잠시 생각하는 동안 ‘아차 그렇지’, 트럭 운전사와 눈이 마주친 건 기억이 나는데,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꿈결 같은 시간이 몇 초인지 몇 분인지 정확하지도 않은 채, 내가 살아 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하자마자 손부터 살펴보았다. 일단 손만 멀쩡하면 치과의사 노릇은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아니지 손은 멀쩡한데 하반신 마비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목을 아주 조심스럽게 돌려보니 ‘어 이거봐라’ 괜찮네. 다음은 허리 ‘으음 괜찮군’. 이제 다리만 괜찮으면 되는데. 어라 오른쪽 다리가 안 움직이네, 내려다보니 바지를 뚫고나와 있는 허연 나의 허벅지 뼈와 정강이뼈가 눈에 확 들어왔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과연 내가 치과의사 노릇을 할 수 있을까? 다리를 자른다면 의족을 해야 할 텐데. 그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구급차가 왔고, 그로부터 일년 반에 걸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리 답답하던 병원생활도 어느덧 익숙해지고, 잠시 퇴원해서 집에 와 있으면 그리 행복하고, 다시 입원하고. 그러면서도 나 이외의 가족의 건강이 염려되고, 병원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지만, 그것도 나에겐 그리 큰 부담은 아니었다. 내가 살아있고 사람구실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그래 삼십오년 동안 건강하게 달리기도 잘하고 하고 싶은 것도 실컷(?) 해 봤으니 나머지 인생은 좀 불편하게 사는 게 머 그리 대수일까?


다치기 전만 해도 병원도 잘 되었고, 골프도 싱글에 가깝게 쳤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잘하고, 남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이었고 스스로도 만족한 생활이었다. 그렇지만 집사람(내가 제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과 아이들에게는 전혀 만족스럽지 못한 생활이었을 거라 싶기도 하고.
주말이면 스키, 골프, 바이크(오토바이)를 즐기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큰 문제는 없는 듯 시간이 지나갔지만 집사람과 아이들의 눈에서 언뜻 느껴지는 섭섭함이 기억나는 거 같기도 하다.


2004년 8월 28일 오전 8시 10분이 내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정상인에서 장애인으로, 혼자만의 행복을 추구하던 남자에서 가족과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남편, 아버지로, 건강함을 당연시 했던 사람에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내게 일어난 사고를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정작 내 자신과 집사람 아이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좀 의외일까? 집사람은 남편과 아버지를 얻었다고 오히려 좋아하는 느낌까지 든다. 막내딸은 아빠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면서 웃고 떠들고, 그런 모습을 보는 나도 기분이 괜찮다. 아이들도 장애인이 된 아빠를 창피해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게 돼서 좋아하는 거 같기도 하고 참.


2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지팡이를 짚고 가족과 함께 약 20일에 걸쳐 미국 서부 지방 여행을 다녀올 정도가 되었다. 차를 렌트해서 운전도 하고 숙소도 찾아 헤매고 그 순간순간이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눈앞에 펼쳐진 장관보다도 내가 아이들과 집사람을 이 곳에 무사히 데려올 수 있는 정도가 되었구나 라는 생각에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고 대견하게 생각되었다. 얼마 전만 해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목욕도 못하던 나였는데. 뭐 별게 행복이 아니구나.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스스로 걸을 수 있고 사랑하고 내가 보살펴야 할 가족이 있다는 거, 그리고 살아있음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게 행복인거구나.오 승 교
·인천 성모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