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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들…

노원종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부회장

구강건강실태조사단

 


공보의 말년차로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준
지역 주민들에게 깊은 감사

 

“삐비비비” “삐비비비” 오늘도 어김없이 방을 뒤흔드는 자명종 소리로 하루가 시작된다. 눈 비비고 일어나보니 새벽 4시, 오늘은 천안으로 구강건강실태조사를 가는 날이다.
올해로 공중보건의(이하 공보의) 3년차, 소위 김정일도 무서워서 못 건드린다는 공보의 말년차이다. 사실 요즘은 플루토늄 때문에 내가 좀 무섭긴 하지만… .


먼지 가득한 닭장 같은 내무반에서 훈련받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말년차라니…  난 1, 2년차 때에 경북 예천에서 공보의 시절을 보냈고, 지금은 보건복지부 산하 구강보건의료연구원에서 주관하는 2006 국민구강건강실태조사단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보의다.
사실 처음 이곳(실태조사단)에는 서울에서 근무하면서 편안한 공보의 시절을 마무리하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지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공보의가 새벽 4시에 골프가 아닌 근무를 위해 일어난다는 사실만으로 이는 충분히 입증된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하는 조사라 며칠씩 지방에서 머물면서 근무하는 건 둘째 치고 우리는 오후 6시가 아닌 저녁 10~11시까지 근무를 한다. 우리 조사단(공보의 8명으로 구성)은 전국 각 지역의 표본 가구를 중심으로 각 가정을 직접 방문하여 각 가구 구성원의 구강건강 상태를 실제로 조사하고 있다.
가정에서 직접 구강검사라…  “그럼 마루에 앉아 한 손엔 치경과 한 손엔 후레시를 들고 검사를 한단 말인가?” 그렇다. 상상만 해도 웃긴 상황이 우리에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제 실태조사가 시작된지 5주째.  사실 힘들었다. 보건복지부에서 왔다며 들어가면, ‘나라가 날 위해서 무엇을 해 줬냐며 욕을 해대시는 할아버지’, ‘치과의사는 다 도둑놈이라고 원망하시던 할머니’, ‘이 조사를 왜 밤늦게까지 하냐며 화내시는 아저씨’, ‘자녀 교육 때문에 본인은 아무리 아파도 치과에는 못 가신다는 아주머니’…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난 참으로 운이 무지무지 좋은 놈 같다는 생각이 요즘에 부쩍 들기 시작했다. 사실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의 시절을 거쳐 공보의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치과의사로서 난 큰 굴곡없이 너무나도 편안하게 인생을 살아왔던 것 같다. 한 번도 일반 환자의 입장에서 아니 어렵게 사는 우리나라의 국민으로서의 입장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실로 이번 조사를 하면서 확인한 것은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엄청난 고통 속에 살면서도 충분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국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한 달 수입이 100만원도 채 안 되는 가족에게 구강검사를 하면서 왜 충치치료를 안 받았는지 물어보는 질문자체가 넌센스 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나 부터도 내년에 어디에 개원하고 인테리어는 어떻게 할지에 대해 고민은 해 봤어도 이렇게 음지에서 고통 받는 국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단 1분도 하질 않았다는 게 너무 부끄럽다. 그동안 사회 기득권으로 누려왔던 행복들이 너무나도 창피하고 부끄럽게 여겨지는 한 달이였다.


지금은 비록 공보의 말년차로서 누릴 수 있는 삶의 여유로움이나 자유로움은 없지만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각 지역의 주민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다가오는 미래에 치과의사로서 활동을 펼쳐나갈 때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한 경험들을 가슴 깊이 새겨 항상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치과의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