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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아날로그와 디지털/백영길 백영길치과의원 원장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아날로그적 행위들
새해맞아 수첩을 다시 마련해야지


월의 속도는 자기 나이에 비례한다고 하였던가? 굳이 나이와 연관짓지 않더라도 요즘은 가속도가 붙어 언젠가 폭발해버릴 것처럼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질주해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들이 바쁘게 돌아가고 변화가 많은 시대에 살다보니, 일상에 필요한 신제품이 나오거나 사용하던 제품보다 한결 기능이 강화돼 출시가 되면 남부럽지 않게 어지간히 잘도 쫓아가며 적응해가던 나도 이제는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그저 전에 사용하던 익숙한 것에 안주하기 시작한지가 벌써 꽤나 오래 전부터이다.


이십여 년 전에 석사논문을 작성할 때에만 해도 원고지에 논문을 작성해야만 했던 전례를 깨고 과감하게 컴퓨터 워드를 사용했었고, 성의가 없다는 일부의 따가운 논란 속에서도 편리하게 논문을 수정하고 제출해 심사까지 가는 혁신을 누렸던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편리하다 하더라도 쉽게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수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 새롭게 업그레이드되는 기간도 너무 짧아져서 사용이 조금 익숙해질 만하면 또 새로운 버전이 출시되곤 하니, 짧아진 life cycle도 문제고 때마다 그것을 수용하기 위해 드는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더구나 원활히 사용하기까지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아깝기도 하거니와, 그만큼 기존에 사용하던 것에 익숙해져 안주하는 게으름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며칠 전, 모처럼 책상을 정리하다가 잘 열어보지 않던 서랍 깊은 곳에 가지런히 잠자고 있던 십여 권의 수첩을 발견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부터 매년 한 권씩 사용한 것을 차곡차곡 모아둔 것들이었는데, 지난 몇 년간을 한 번도 손을 대지 못한 채 그렇게 한 구석에 묻혀있었던 모양이다. 반가움과 호기심에 지난 세월들을 한 장씩 넘겨보니, 즐겨 쓰던 만년필의 파란 잉크로 거의 빼곡히 채워져 있는 그 수첩에는 나의 이십대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친구들과의 약속과 만남, 그날 일어났던 일에 대한 간단한 메모, 잊고 지냈던 친구들의 주소록, 그리고 어쩌다가 미팅을 하고난 후에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당시 파트너에 대한 느낌… 그냥 흘러버리기 아까워 간단하게나마 끄적여놓은 이런 저런 생각의 꼬투리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메모를 뒤져보는 사이에 어느 덧 많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해가 바뀔 요즈음 무렵이면 연례행사로 행해오던 일이 있었다. 다름 아닌 수첩 정리가 그것이다. 연말이 되면 새로운 수첩을 사서 한 해 동안에 기억해야 할 지인들의 생일과 치러야 할 행사 등을 뒤적이며 새해의 수첩에 옮겨놓고, 수첩 뒤에 부착된 전화번호부에 지난 전화번호부를 뒤적이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주소와 생년월일을 옮기는 일은 한 해를 돌아보게 할 뿐만 아니라 한 해 동안 연락을 취해왔던 사람들과의 인연을 추억하고 한동안 소원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한 번이라도 더 연락을 하게 만들었던 소중한 일이었다. 서랍을 열어보면 지난 수년간의 수첩이 마치 추억을 담은 소중한 보물처럼 늘 한 켠에 두툼하게 자리하고 있었고, 때로는 몇 년 전의 수첩을 뒤적이며 그 해에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지냈는지 기록된 것들을 통해 내 삶을 반추해보던 것도 무척이나 즐겁고 소중한 일로 기억이 된다.


누군가 사용하던 무척이나 신기하게 보였던 전자수첩이란 것이 내 손에 쥐어지면서부터 만년필로 기록하던 수첩은 어느 새 슬그머니 내 손에서 사라져버렸다. 전자수첩의 사용이 익숙해지자 수첩보다 자그마하고 얇은 전자수첩의 편리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세월이 또 흘러가면서 그 전자수첩의 자리는 어느 새 핸드폰이 차지하게 되었고, 전자수첩은 어느 서랍 구석에서 잠을 자고 있는지 지금은 기억 속에서조차 사라져버렸다. 


편지를 무척이나 즐겨 쓰곤 했었다. 친구들에게, 선후배들에게, 그리고 때로는 수신자를 정해놓지도 않고 그저 나의 내면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