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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2)나의 장례식을 디자인하고 싶다/이주영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선한 씨앗을 열심히 심으며
올해도 살아가고 싶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신년벽두다. 이맘때면 지난해를 반성하기도 하고, 새해에 하고 싶은 일을 적어 보고 어떻게 실천해갈까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곤 한다.
자신의 삶을 깊이 생각하게 되는 이런 시기에 한번 같이 생각했으면 하는 것이 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얼마나 생각해 보았는지 모르겠다. 365일 중에 하루쯤은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어떻게 죽었으면 좋겠는가? 죽는 순간의 장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음을 맞이할 때 스스로 어떤 인생이었다고 정의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가 하는 말이다.
뚱딴지 같이 연초부터 죽는 얘기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삶과 죽음은 바늘과 실 같이 한 짝이기도 하다. 마치 모래시계의 한쪽이 기울면서 다른 쪽이 채워지듯이 우리는 살면서 동시에 죽음에 다가가고 있다. 삶의 결승 테이프는 죽음이 아니던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자세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살아서 마침내 도착한 곳이 진정 올바르고 우리가 바라던 목적지 이어야 하겠다.
어쩌면 죽음에 대한 생각이 삶의 방향을 가리켜 주는 방향키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내게 어떻게 죽고 싶다고 느끼게 한 일이 있었다.


10여 년 전 미국 남가주(USC)대학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던 나는 Robert Schacter 교수와 친해져서 대학보다 그의 병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넥타이를 매고 나오라 하더니, 교통사고로 갑자기 사망한 환자의 장례식장에 나를 데리고 갔다. 짧은 예배를 마친 후 고인을 기억하며 같이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정해진 사람 없이 누구든지 나와서 고인과 있었던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추억들을 이야기하자고 했다. 스페인어를 가르쳤던 선생님이 나와 그녀가 했던 작은 실수를 회상시켜 모두를 웃게 했고, 같은 반 단짝 친구들은 학창시절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를 나누기도 했다.


그저 흥미롭게만 바라보다가 문득 내가 죽으면 무슨 느낌들이 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의 기억을 같이 나누려고 연단 좌우에 줄지어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수많은 친구들과, 그 큰 볼륨을 가득 메운 수백 지인들의 마음에 그녀는 분명 따뜻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듬뿍 남기고 떠났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만나는 이들의 마음 속에 무엇을 남기며 살아왔을까?
가벼운 웃음으로 시작했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애통하는 마음이 이어지고 볼륨 가득 애도의 마음이 가슴 깊이 느껴지는 그 순간은 비록 아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살아있는 내게 조차 너무나 부러운 시간이었다.


이 정도면 한번 죽어볼 만도 하겠다. 아니 기왕이면 이렇게 죽고 싶다는 생각이 생전 처음 들었다. 물론 문화적 차이 탓도 있지만 표현하던 하지 않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처럼 진하게 남을 일들이 나의 삶에도 채워지길 기도했다.
길게 이어지는 시간을 마저 다 하지 못하고 일어섰지만, 그 날 전혀 모르는 이의 장례식에서 내 가슴에 새겨진 2시간여의 기억은 지금도 내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어떻게 살다가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어떻게 죽어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나오고, 그걸 위해 앞으로 5년, 1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고, 그럼 당장 금년은 무얼 해야 하고, 바로 오늘 해야 할 일이 나올 수 있다.
나만 위한 삶이기 보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선한 씨앗을 열심히 심으며 올해도 살아가고 싶다.

 

좀 다른 얘기지만 기왕이면 자신의 장례식을 디자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몇 달 전 내가 Associate Clinical Professor(교수, 임상교수)로 있는 캘리포니아 로마린다대학 교정과에서 전체 교수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과 행정 비서인 Janice Richardson이 췌장암에 걸렸다는 슬픈 소식이었다. 지난해 내 모든 일을 자기 일처럼 헌신적으로 돕던 그녀의 갑작스런 소식에 얼마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