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한 물건을 팔며
수익금으로 이웃을 도와
여러사람이 행복해졌다
지난 1월 20일 대한여자치과의사회에서 국제이주여성을 돕기 위해 일일 아름다운 가게를 열었다.
날짜와 장소를 정하고 나니 우리가 가장 먼저 할일은 아름다운 가게에서 팔 물건을 기증하는 일이었다. 가만히 살펴보면 집안에 자리만 차지하고 안 쓰는 물건들도 참 많다. 물론 그 물건들을 쌓아 놓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새것이라 버리기 아까워서, 언젠가는 쓸지도 모르니까, 필요한 사람 있으면 주려고 등등… 그렇게 수년째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는 물건들을 필요한 사람이 쓸 수 있도록 내놓는 일은 서로 기쁜 일이다.
그래, 이참에 나도 집 정리를 좀 해보자… 굳게 결심하고 장롱을 열어보니 존재 자체도 잊어버린 가방, 옷, 악세서리 등이 나온다. 그렇다고 내가 물건을 많이 사들인 것도 아닌데 워낙 버리는 것을 못하다보니 그동안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던 거다.
하루 저녁 박스를 구해다가 그래도 쓸만한 물건들을 정리하니 금새 두 박스가 찼다. 마음 같아서는 다섯 박스도 채우고 싶었지만 무료택배로 보내야 하니 치과로 박스를 가져가야 할 상황이라 두 박스에 최대한 눌러 담았다.
물건들을 보내고 서여치 송년회에 가서 당일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만원 짜리 티켓도 사니 이제는 그날이 손꼽아 기다려졌다.
사실 나는 한번도 아름다운 가게에 가 본적이 없다. 나의 주 활동 지역인 구로나 영등포에는 아름다운 가게가 없다. 그래서 나도 호기심 반으로 가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온 것이다.
드디어 기다리던 아름다운 하루가 되어 토요일 2시 진료가 끝나자마자 지하철을 타고 아름다운 가게 봉은사점으로 갔다. 한적한 토요일 오후를 이렇게 혼자 걸어보는 것도 얼마만인지… 걷기에 좋은 겨울답지 않은 따뜻한 날씨였다.
봉은사점은 삼성동 봉은사내에 있는 작고 아담한 가게다. 안으로 들어서니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벌써 먼저 오신 선생님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 계셨다. 우와~! 정말 사람도 많고 물건도 많았다. 그중에는 내가 기증한 낯익은 물건들도 있었다. 10여 평의 가게가 거의 폭발할 지경이었다. 오전부터 계셨던 선생님들 이야기를 들으니 오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단다.
마침 그날은 봉은사의 한달에 한번 있는 큰 법회가 있어 일반 손님들도 많았다. ‘이는 분명 오늘이 아름다운 하루가 되도록 하늘이 도우신게야….’
몇몇 선생님들은 그 전날 밤 11시까지 다음날 있을 하루 행사를 위해 가게의 물건정리와 배열을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다음날 다시 달려와서 아침에 있었던 오픈식에도 참석하고 일일 판매 도우미도 하고 계셨다. 참 대단한 분들이다. 존경스럽다.
앞치마를 두르고 물건을 고르는 손님들을 돕고, 흐트러진 물건들을 다시 배열하고 하다보니 어느덧 6시 마감시간이 되었다. 문 닫기 바로 직전에 나도 도우미를 하며 눈여겨 보아둔 가디건 두 장과 영화CD 한 개를 샀다. 내 옆의 선생님은 조카를 위한 동화 테이프 전집을 사고서 아주 좋아하셨다. 한 선생님이 미국에서 사 오셨다는 영어 동화책 몇 박스는 이미 오전에 다 나갔는지 흔적도 없었다.
그곳에서 내가 본 어떤 아주머니는 책을 거의 두 시간동안 고르시더니 수 십 권의 책을 사가지고 가셨다. 양손에 들 수가 없을 정도여서 차까지라도 들어다 드리겠다고 했더니 한사코 사양하시면서 기쁜 표정으로 가셨다.
드디어 문을 닫고 여러 선생님들이 나서서 청소를 하고 나니 혼자 먼지를 다 뒤집어쓴 듯 바지에 먼지가 가득 붙어있고 다리가 몹시 아팠다. 겨우 세시간 반 서 있어서 이렇게 힘들다니 매일 이런 봉사를 하시는 분들 참 대단하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치과일 힘들다고 불평 말아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이날 행사 수익금의 일부는 이주여성인권센터를 통해 국제 이주여성을 돕는데 쓰였고, 나머지 수익금은 아름다운 가게를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