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된 사고로 인해
잘못된 정책이나 제도가
또 만들어질까 두렵다
우리 사회에서 소위 힘 깨나 쓴다는 사람들의 (ex. 정치인, 고위 공직자, 재벌 회장, 지방 자치 단체장, 대기업의 노조 위원장, 대학 총장 등) 사무실을 둘러보면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공통점은 그들이 사용하는 책상이나 탁자는 사전에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당구대에서 봤음직한 녹색 천으로 덮여있고, 그 위에 5~6mm두께의 유리로써 한 번 더 포장 돼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모습의 책상, 탁자를 볼 때 마다 그 사용자에게 묻는다. 왜 값비싼 원목 가구 위에 녹색 헝겊은 깔고 유리로 덮어 놓았느냐고.
그러자면, 그들은 상당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전혀 설득력 없는 답변을 우물우물 궁색하게 늘어 놓는다.
이들을 유형별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전임자가 그렇게 해 놓았다 ‘책임 전가 형’
2. 오래된 관행이다 ‘전통 중시 형’
3. 이 사람아 왜 나만 갖고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 가지 인데 ‘물 귀신 형’
4. (화를 버럭 내며) 이 따위 쓸데 없는 질문을 하면 가만 안 두겠어 ‘단순무식 막가파 형’
5. 아~무 이유 없어. 내 맘이야 ‘죄민수 형’
6. 때도 안 타고 시력 보호에 그만이다 ‘잔 머리 애드립 형’
지체 높으신 양반들의 사무용 가구에 녹색 헝겊이 덮이고 또 그 위에 유리가 놓이게 된 유래는 확실치 않다.
오랜 공직 생활을 하신 선배님의 말씀을 빌자면, 거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구구한 설(?)이 있으나 가장 유력한 것은 이러하다.
한국 전쟁이 끝난 1953년 당시, 군 부대 안에는 변변한 책상이나 탁자가 없었다. 그래서 판자 조각 들로 사무용 가구를 급조 하였는데, 이것들이 모양이 별로 시원치 않았기에, 그 위에 헝겊을 덮고 유리로 치장 하였다. 그 후 1961년 5·16이 나고 군사 정권이 들어서자, 군인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사회 각계의 요직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때, 그 군인들은 습관적으로 군대에서 하던 방식대로 자기 사무실의 책상이나 회의실 탁자 위에 녹색 헝겊을 올리고 유리로 덮었다. 그런데 그것이 일반인의 눈에는 권좌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한편으로는 신선하다는 느낌에, 또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에, 정치인, 공무원, 언론인, 기업인, 종교인 등 너 나 할 것 없이 무분별하게 권력층의 사무실을 그대로 흉내 내어 꾸미다 보니 사무실 가구의 이러한 분장은 각계 각층에 급속도로 유행처럼 확산 되었고, 이후 그것에 대한 아무 생각이 없는 후임자들에 의해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요약 하자면, 왜, 언제부터 높으신 어른들의 사무용 가구가 앞서 말한 이상한 형태로 둔갑하였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래야 어떻든 간에, 이러한 웃지 못할 잘못된 관행이 그 후임자들의 무뇌(Brainless)의 사고 또는 정체된 사고에 의해 현재까지 꿋꿋하게 계승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60년 대에는 그 시대적인 특수성에 의한 해프닝으로 돌려 버릴 수 있겠지만 오늘날 고급 원목 가구를 헝겊과 유리로써 도배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목재가 지닌 장점들로 인해서, 웰빙 시대에 걸 맞는 최고의 주택과 가구는 통나무 주택과 원목가구인 것이다. 그러나 그 좋은 원목 가구를 헝겊과 유리로써 밀봉해, 질식 상태에 빠뜨려 놓고, 아무런 생각 없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조차를 모른 채,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높으신 양반들을 볼 때, 그들 모두가 생각이 정지되어 버린 로봇처럼 느껴진다.
더욱 슬픈 현실은 정체되어 버린 사고를 지닌 바로 그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지도자를 자처하며, 각 분야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잘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정체된 사고로 인해 또 다른 잘못된 정책이나 제도, 관행이 새로이 만들어 지지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다.
‘나는 생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