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만 있어도 든든하고
함께 울 수도 웃을 수도 있는
그 친구들이 정말 보고 싶다
주말에 쉬지 못하고 2주간을 바쁘게 달려온 탓인지 아니면, 병원에서의 수많은 스트레스 탓인지 이번 주말에는 몸이 좋지 않았다. 몸이 으슬으슬하고 열도 조금 나는 것이, 환절기에 오는 비염인지 아니면 감기인지 모르겠지만, 이틀간 꼬박 몸살을 앓았다. 지독하게도 부비동을 자극하는 통증과 끊임없는 재채기는 바야흐로 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알러지성 비염이 있는 내 코는 봄이 오는 것을 그 어느 것보다 먼저 아는 센서이다. 이틀 남짓 앓고 나니 지금은 한결 상쾌하다. 오늘 오전에 군대에 가있는 내 친구 대원이에게 전화가 왔다. 사정상 교대를 졸업하고 임용이 되어 교단에 일년여 동안 근무한 후 늦게 군대에 가있는 친구이다. 친구의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가 너무 반가웠다.
친구는 단박에 내 코맹맹이 목소리를 맞추면서, 감기에 걸린 것을 알아챈다. 농담 삼아 군대 땡보관, 사회보다 군대가 편하니 선생질 관두고 그냥 말뚝 직업군인으로 남으라며 장난하며 통화했다. 그 친구 왈, 군대도 편하지만 얼른 사회에 나와서 술 한잔 하고 싶다며, 너스레를 떨며 의뭉스럽게 웃는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호탕한 웃음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친구이다. 전화를 끊고 나니 난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나에게는 친구가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을 참 많이 만난다. 어제 들른 미용실에서 만난 미용사, 점심에 시킨 자장면을 배달해주는 배달부같이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도 많지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일상을 꾸려가는 사람들도 많다.
내 맘이 ‘100’이라면 일상을 나누는 사람에게는 ‘50’정도만 보여 주고 사는 것 같다. 자타가 인정하는 애주가인 나로서는 술자리를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80’정도까지 보여준다. 온전한 내 모습 ‘100’을 아는 사람을 손가락으로 꼽아보라면… 글쎄? 생각해보면, 온전한 나를 아는 사람은 가족도 아닌 ‘친구"이다. 요즘 들어 친구라고 부르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냥 아는 사람, 과동기, 그냥 친한 애 정도로 호칭을 붙이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내가 친구라 부르는 사람은 말뜻그대로 ‘가까이 두고 오랫동안 사귄 벗’이기 때문이다. 옆에만 있어도 든든하고, 서로의 미래를 걱정하며 같이 설계하고, 고민하고, 내 고민을 맘껏 털어놓고 울 수도 웃을 수도, 너무 진지하게 파고들지 않으며, 진지함도 장난으로 넘길 수 있는 내 친구, 내 벗들….
그 ‘친구’들은 지금 해외에서 군대에서 그리고 대학에서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일궈 나가고 있다. 가끔 생각나 전화를 걸면 대뜸 육두문자와 구수한 사투리하며 전화를 받는 내 친구들. 서로 결혼할 때 함 들어 주기로 약속하고, 결혼한 후에도 함께 어울리며, 어려운 일, 힘든 일 함께 나누어줄 친구가 나에게는 있다.
당신은 이런 친구가 있는가? 옆에 있기만 해도 든든한 친구들 말이다. 오늘은 그 친구들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허물없이 지내며 웃고 울던 수많은 학창시절로 되돌아가기는 힘들겠지만, 서로의 소중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을 그 친구들이 보고 싶다. 그리운 친구들이 있다면 지금 전화를 걸어 인사 한 번 해보는 것은 어떨까?
‘친구야! 잘지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