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들을 남발하고 있다
특히 선거때가 되면
함부로 새끼손가락을 건다
몇 년 전부터 나에게도 결혼 주례를 봐 달라고 부탁이 들어오는 걸 보니 이제 나도 나이를 먹고 인생이 늙어 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결혼 주례사에서 빼 놓지 않는 말이 바로 부부간에도 약속을 잘 지키라는 말이다. 결혼 자체도 법적, 사회적 그리고 집안간의 나아가서는 두 사람 사이에 한 평생을 같이 잘 살아보겠다는 약속이 아닌가. 어떤 신혼부부는 후일 인사차 찾아와서 주례사를 되새기며 “교수님은 약속을 다 지키시고 하신 말씀인가요?”라고 묻기도 하여 나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럴때면 “선생이란 자기가 다 직접 체험 한 것만 가르치는 게 아닐세, 비록 자신은 체험 못했더라도 바람직한 것을 가르치고 말하는 게 스승이라네. 근데, 자네 요즘 들어 어른한테 대드는 버릇이 생겼구먼…” 하고 말을 돌려 어물쩡 넘어 가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주위엔 약속을 너무 가볍게 하고 너무 쉽게 깨어버리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가족 간에도 ‘오늘 일찍 들어오겠다느니’ ‘이번 일요일엔 애들과 외식하자’는 등의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안한 것도 아닌 식의 약속은 그냥 잔소리로 흘려버리는 것이 습관이 돼버렸고, 회합 때 만난 사람들과 ‘언제 한번 저녁이나 같이 하지’라고 말한 것은 그 말 했다고 그걸 지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무뎌져 있다. 언젠가 장기 연수차 내한했던 외국 치과의사에게 인사치레 상 그 말을 했다가 ‘시간과 장소를 말해 달라’고 몇 차례나 전화 연락을 받고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들에겐 인사치레 약속도 약속은 약속이기에 꼭 지킨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그들을 우리는 이성적이라 평한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이 다소 중요한 저녁 모임이나 회합을 가지자고 하면, “오늘 저녁엔 애들과 저녁식사 약속이 돼 있어 미안하다”라고 말하며 빠지는걸 보니 격세지감도 들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요즘 세상에 밥 못 먹는 애들도 있나?’하며 혼자 중얼거리기도 한다.
약속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어릴 때 읽었던 오 헨리의 단편소설 사랑의 약속(Appointment with love)이란 줄거리가 떠오른다. 2차 대전 중 미군 전투조종사가 본국의 얼굴 모를 처녀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펜팔을 했는데 점점 정이 들어, 위기가 닥치거나 어려울 때마다 그녀를 생각하고 용기를 얻어 무사히 전쟁을 마칠 수 있었는데, 전쟁 후 상상으로만 예쁜 모습을 그리고 있던 그 아가씨를 한 번 만나보고자 약속을 하게 되었던바 서로 간에 얼굴을 모르니 기차역 앞에서 약속시간에 장미꽃을 들고 나오기로 약속 했다나, 그런데 막상 약속시간에 그 자리에 나갔던 미군 조종사는 장미꽃을 들고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키 작고 못생긴 추녀를 보고 실망해 아는 체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끝내 자신이 어려웠을 때 용기를 준 반려자로 여기고 그녀를 불렀는데, 막상 그녀는 길 건너편 골목길에 서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아리따운 아가씨를 가리키며 “저 아가씨가 시켜서 자신은 단지 꽃을 들고 이 앞을 걸어갔다”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동화같은 유치한 이 이야기는 요즘 세상엔 안 통하겠지만, 그래도 어릴 적엔 사랑과 약속이라는 꿈과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해 준 소설이기도 했다.
며칠 전 지역사회 몇 인사들과 함께 저녁 회식 모임을 갖고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나이 지긋한 어느 한 분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 분의 체격이 나이답지 않게 단단해 보였고 인상은 다소 험악했지만 행동이 매우 점잖았다. 그런데 악수를 하고 보니까 그 사람의 새끼손가락이 없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의아해 하자 곁의 사람이 설명해 주었다. 과거에 이분은 유명한 조직의 일원이었는데 지금은 손을 씻고 지역사회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단다. 30여 년 전 국가적으로 큰 화를 당한 사건이 있었을 때 우리 국민의 성의와 염원을 보이고자 여럿이서 새끼손가락을 절단하여 청와대로 보냈다나. 그 말을 듣고 겁먹은 표정을 하고 서 있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