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소외받은 이웃들의 벗임을 자처하면서 철저한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아간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점 부끄럼 없이 평생 이웃 사랑을 몸으로 실천한 진정한 인술을 펼친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미약하지만 그들을 본받아 하나님이 허락한 소명이란 생각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나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장기려 박사 진료봉사 역할 모델 삼아
대학시절 나환자촌 경험 인술 밑거름
부부모임 통해 소년소녀가장돕기도
국의 슈바이처’, ‘살아있는 성자’로 기억되는 장기려 박사를 가슴 속의 모델로 삼고 있는 김승범 원장(병영김 치과의원)은 울산지부에서 묵묵히 선행을 실천하고 있다.
김 원장이 개원 후 봉사를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전인 2002년경부터다.
태연학교에서 봉사진료를 시작한 것이 2002년. 중구보건소와 성안장애인복지관에서는 2004년경부터 봉사활동을 해왔다.
김 원장은 “평균 한 달에 한번 꼴로 봉사를 나가고 있다”며 “대학을 졸업하고 개원하면도 봉사를 하고 싶었지만 역량이 부족해 현실화하지 못했다. 봉사는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치과의사로서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가 됐다. 저보다 봉사활동을 훌륭하게 해내시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부끄럽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원장의 진료봉사는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치대 재학 시절, 가톨릭 학생회에서 활동했던 김 원장은 본과 1학년때부터(81년) 음성나환자촌으로 진료봉사를 나가곤 했다.
김 원장은 “처음 나환자촌에 진료를 갔을 때에는 나환자들이 악수를 청하면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어떤 때는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입는 복장을 특별히 주문해 우주인처럼 온 몸을 감싸고 진료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져 나중에는 반가운 마음으로 악수를 하기로 했다. 나환자들을 보면서 측은지심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감정이 많이 순화됨을 느꼈다”고 대학시절을 회상하기도 했다.
김 원장은 또 “지금은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부산의 한 원장님이 생각난다”며 “음성나환자촌은 특수지역이기 때문에 봉사를 나가기 위해서 더 많은 희생정신이 필요하다. 그런데 가톨릭 학생회 시절 봉사활동을 나간 나환자촌에서 한 원장님이 진료봉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어서 많이 놀랐고 감동을 받았다. 원장님의 모습을 보면서 진료봉사를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쑥스럽다며 ‘마누라를 잘 모시는 모임(이하 마잘모)’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마잘모는 2002년 김 원장을 중심으로 다섯 쌍의 부부가 참석해 발족됐으며, 연말마다 생활이 어려운 집을 찾아내 병원비에 보태 쓸 수 있도록 금일봉을 전달하는 일을 해왔다.
앞으로는 마잘모의 봉사 활동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소년소녀가장돕기 운동을 중심으로 확대해나갈 계획도 갖고 있다.
김 원장은 울산시 중구 회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울산지부 회원들이 더 많이 봉사에 참여해 나눔의 기회를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바람도 갖고 있다.
원장은 “중구보건소에서 하는 봉사활동을 예로 들자면 매주 목요일 오전마다 진료봉사를 하면 된다. 1년으로 계산하면 52번 봉사진료를 하는 꼴이다. 회원 52명이 참석하면 1년에 한번만 하면 된다”며 “진료봉사를 하는 사람은 쉽게 받아들이고 열심히 하지만 아무리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어도 봉사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봉사활동에 참석하면 서로 부담도 줄고 나눔을 통해 삶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봉사에 함께 참여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치과의사로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첫 걸음이 진료봉사”라며 “사회적으로도 기부문화를 이뤄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만큼 치과의사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감을 갖고 작은 봉사부터 실천하면 좋겠다. 봉사를 통해 마음으로 진료하는 의사가 되길 바란다”고 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