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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8)나눔의 행복/이동준

 

내가 베풀면
그 베풂이 되돌아와서
내 기쁨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지 않은 기억이지만 아직도 가슴 속에 또렷이 남아있는 기분 좋은 추억이 한가지 있다. 벌써 20년이 더 된 일이다.


장마철이 끝나고 본격적인 불볕더위가 시작된 어느날 오후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해 처음으로 맞는 여름방학을 며칠 앞둔 시점인듯 싶다. 그날 학교 수업을 마치자 무작정 더위로부터 달아나고만 싶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교문을 벗어나면 언덕길로 이어졌다. 아스팔트를 녹일 듯한 더위로 가빠진 호흡과 맥박은 6000미터 고도의 히말라야 산맥을 등정하듯 나를 극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었다.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귓가를 맴돌 정도였으니까. 땀과 씨름을 하면서 걷고 있는데 허리가 구부정한 할아버지 한 분이 내 앞을 지나갔다. 지팡이에 의지한 채 무척이나 힘겹게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기고 계신 모습이 신체적으로 자유롭지 않아 보였다. 내가 지닌 고통도 감당하기 힘들었던 나는 처음엔 무심코 할아버지를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몇 걸음을 옮겼을 때 등 뒤에서 할아버지의 힘겨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의 한숨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할아버지께 다가갔다.
“할아버지, 어디까지 가세요?"
“응, 운동 삼아 나왔다가 집에 가는 길인데, 오늘은 날이 더워서 그런지 많이 힘들어."
“할아버지, 업히세요.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할아버지는 손사래를 치셨지만 나는 우격다짐으로 할아버지를 업었다.
할아버지 댁까지는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날이 더운데다 언덕길이 있어서 금방 내 이마에 땀이 맺히고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힘들지?"
“아뇨, 괜찮습니다."
“자네, 성이 뭔가?"
“이갑니다."
“본관은?"
“경줍니다."
“허허, 경주 이씨가 양반이지. 암."
멀게만 느껴지던 할아버지 댁 앞에 도착했다.
등에서 내리신 할아버지는, “이제 다 왔구먼. 자네 때문에 내가 조금은 더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네."


나는 할아버지께 “오래오래 사시라"고 인사를 드렸다.
할아버지께서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하셨다.


세월이 흘렀지만 이 작은 사건은 내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다. 나의 작은 도움이 그 할아버지에게는 큰 기쁨이 됐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은 나눔이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베풀면 그 베풂이 되돌아와서 내 기쁨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 모두가 함께 더불어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바로 나눔이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 어린 나이지만 나는 처음으로 더불어 함께 한다는 즐거움을 깨달았다. 기회가 된다면 얼마든지 작은 나눔을 함께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곤 한다.


장애환자들을 위한 재활전문병원 건립을 목표로 하는 ‘푸르메재단"에서 장애인 전문치과인 ‘푸르메 나눔치과"의 문을 열었다. 나눔치과를 통해 내가 가진 것을 조금 나누고 그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인들과 서로 마주보며 환하게 웃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즐겁고 설렌다.
20여 년 전 할아버지와의 작은 경험이 나를 때때로 미소 짓게 하고 나눔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듯이 푸르메 나눔치과와의 인연이 내 삶을 행복하게 하는데 큰 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나눔은 내가 가진 것 중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것을 함께하는 것이란 것을 절감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