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글쭈글한 손이면 어떻고 등이 굽으신들 어떻습니까? 지금이라도 그냥 나오세요 제가 펴 드릴께요
그렇지만 나는 얼마 남지 않은 군 생활이지만 이제는 더 어머니와의 만남을 미룰 수가 없었고,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를 한국에 잠시나마 오시라고 했다.
77년 12월에 한국으로 내가 끊어드린 비행기 표를 들고 기다리던 어머니와의 만남이 이뤄졌다.
너무 오래만에 만나서 그런지 어머니는 허리가 굽어지셨고 56세의 연세에 골다공증까지 오신 것이다.
150센티도 안되시는 가벼운 어머니를 나는 길을 건널 때면 내가 등에 업고 길도 건너고 손도 잡아 드리면서 상봉의 기쁨을 맛봤다.
어머니께 맛있는 음식도 사 드리려고 무엇을 좋아하시냐고 물었더니 미국 참외가 먹고 싶으시다고 하셨다.
나는 유명한 수퍼마켓을 돌아다니면서 수입산 참외를 여러 종류로 사서 드렸지만 어머니가 원하시는 참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어머니가 원하시는 과일은 아니었지만 아들인 내가 사다드린 과일을 맛있게 드시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고 내가 너무 흡족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어머니께서 원하셨던 참외가 비로소 내가 미국에 왔을 때야 어떤 것인 줄 알았다,
바로 허니듀 였다. 미국에서는 흔하지만 70년대 말 한국에서 찾기란 불가능했었고 내가 보거나 듣지도 못한 그런 과일이었다.
어머니께서 일본에 계셨을 때 드셔 봤던 그런 과일이었다. 이틀간의 잠시 만남을 뒤로하고 나는 다음주에 다시 올 것을 약속하고 군 임무지로 되돌아갔다.
다음주에 다시 가려고 일주일이 빨리 가기를 기다리는데 여동생한테서 새벽에 시외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급히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것이다.
나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면서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서울로 다시 올라갔다. 병원에 계신 어머니는 심한 통증 때문에 내게 그냥 ‘왔냐’ 고만 하셨을 뿐 통증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계셨다.
너무나 통증이 심하셔서 거의 숨을 못 쉬실 정도가 됐을 쯤 갑자기 어머니 모습이 달라지시면서 숨을 거두셨다.
그토록 기다렸던 어머니와의 상봉이고, 어머니를 위해 적금도 들고, 어머니가 원하시는 대학에 가고, 어머니와 대화를 하려고 어머니의 모국어를 강한 의지력을 갖고 배웠고, 어머니와 같이 살려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 위한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는 나를 기다려 주지 못했다.
아니, 우리의 모자의 해후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나버렸다.
나의 허탈감은 이루 말 할 수 없고, 나는 이제 꿈이 없어 졌다.
꿈이 없으니 희망도 사라지고 허무한 마음은 내 청소년기에 겪었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아픔이였다. 청소년 때는 그나마 어머니를 만날 희망이라도 있었고 꿈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꿈이 허황된 꿈도 아니고 아주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슬픔에 대한 모든 어떠한 형용사를 동원해도 나의 단장의 아픔과 애절함을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했다.
병원 영안실로 옮겨가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주검 앞에 여동생과 나, 둘이서는 어떻게 장례를 치룰 것인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묘소에 마지막 흙을 덮을 때에 나는 동시에 공부하던 일본 책도 덮어버렸다.
하관을 하고 나서도 아침부터 억수같이 내리는 비가 그치지 않아, 내가 흘린 눈물인지 빗물인지 내 얼굴은 범벅이 되고 마음도 똑같이 온통 범벅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의 사망 신고를 일본 대사관에 가서 마치면서 돌아오는 길에 나의 발길은 미국 대사관으로 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안 계신 일본보다 쓰라린 아픔을 잊으려고 더 멀리 도피하고 싶은 충동도 작용한 것 같다.내가 억지로 정신을 차린 것은 미국행 비행기를 타면서 였다.
그렇지만 이제 2남 1녀의 아버지가 된 나는 아직도 어머니의 애틋한 그리움은 잊을 수가 없고, 제사 때만 되면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던 허니듀를 제삿상에 올려 보지만 그런 것으로 내 마음이 편안해 질 수가 없었다.
못 다한 효도의 아쉬움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에는 그러한 제삿상으로는 너무 부족한 것이다. 아쉬움을 달래려고 일년이 멀다하고 고향 땅 어머니의 묘소를 찾아가지만, 나의 깊숙한 마음 한 구석에는 늘 부족한 갈증이 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오늘도 어머니의 묘소 앞에 엎드려 이렇게 독백하고 있다.
어머니 !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내가 어머니 꿈을 얼마나 많이 꾸는지 아십니까?
나는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이 그립습니다
쭈글쭈글한 손이면 어떻고 등이 굽으신들 어떻습니까?
지금이라도 그냥 나오세요 제가 펴 드릴께요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 나쁜 짓 하여 어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해 드린 것을 사죄드릴께요
정말 미안하고 죄송해요
다 용서 하세요 다시는 그러지 않을 께요
다시는 어머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