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과 이성이 더 굳기전에
내 생각 반대편에 있는 것을
한번 마음으로 껴 안아봐야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일까?” 초등학생 일기장속의 한 문구처럼 여름장마보다 더 장마 같은 가을비가 계속되고 있다. 수자원공사에게는 효자비이겠지만, 결실을 맺어야 하는 가을 들녘을 바라보는 농림부에게는 원망스런 불효자일 수밖에 없는 이 가을비를 바라보는 마음들이 각기 다르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한 달여 이상 국민들의 마음을 애타게 했던 인질들의 석방 소식을 듣고 어떤 이들은 안도의 눈물을 흘렸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국세를 축낸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시위를 했다. 곧 다가올 세금납부일을 체크하며 우리가 이렇게 애써 낸 혈세를 명분없는 일을 위해 썼다고 생각하니 울컥 화도 치민다.
나도 목소리를 높여서 그들에게 비용을 배상하라고 항의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다가도 얼마 전에 만난 친구의 말을 떠올려 본다. 싸움터에서 매를 맞고 온 아이에게 왜 그 자리에 있어서 맞고 왔느냐고 야단을 치는 게 맞는지 생각해보라고 했던… 또 우리의 지난 과거를 생각해 보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 땅에 와서 고난한 삶을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보다 풍성하게 해준 많은 선교사들의 공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난 개인적으로 종교를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종교적 신념 하에서 보다 숭고하고 선한 명분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그것이 선교활동이건 봉사활동이건, 그들의 수고를 폄하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의 입장에 반하는 상황들에 대하여 보다 예민해져 감을 느낄 수 있다. 운동약속이 되어있는 날엔 빗방울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그 비가 어느 갈증난 대지에 희망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줄어든다. 종합소득세를 내야할 때가 되면 내가 낸 세금이 저렇게 쓸모없이 쓰여 지는구나 하고 짜증이 난다.
타국에서 어려움에 처한 그들의 숭고하고 선한의도를 미처 생각해볼 여유가 사라진다. 한번쯤 내 생각 반대편에 있는 것들을 이해하고 인정해보려고 애써보는 수고를 하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들과만 친구가 되고, 내게 이익이 되는 정책만을 추종하고, 굳이 해를 끼치지 않더라도 그냥 나와 반대라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세상의 많은 부분과 등을 지고 산다.
아마도 사회에서 기득권층이라 불리는 나를 포함한 우리 같은 사람들이 더 그러할 것이다. 내 감성과 이성이 더 굳어 딱딱해지기 전에 내 반대편의 그들도 한번 마음으로 껴 안아봐야 할 것 같다. 그들도 또 누군가에겐 같은 편의 선한 친구 일 테니까. 자기편들끼리만 만들어가는 자기들만의 천국이 아니라 반대편들에게도 빛을 나눠 줄 수 있는 그런 우리들의 천국을 만드는데 작은 보탬이라도 되어야할 것 같다. 이 마음의 시작이 벌써 반이라도 된 듯 자만한 마음도 들지만, 그 또한 아름다운 자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