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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1번째 이야기)가을 무지개/김광화 김광화치과의원 원장


독실한 신앙의 힘으로
모든 환경을 이기고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충청북도 괴산군 속리산의 남쪽 끝자락.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첩첩산골, 휴대폰도 무용지물(통화권이탈)인 산동네, 몇 가구 되지 않는 그곳에 한 손에 꼽는 사랑하는 친구가 살고 있다. 평소보다 일찍 근무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친구 집을 향해 떠났다. 단풍관광 시즌에 주말까지 겹쳐 교통 정체가 심했지만 청명한 가을 하늘과 울긋불긋 가을 산의 정취에 취해 지루함을 몰랐다. 초행길이지만 네비게이션 덕택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큰 길까지는 쉽게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친구가 사는 곳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곳이라서 큰 길 입구까지 마중 나온 친구 아내의 뒤를 따라 비포장 길을 한참을 달렸다. 이미 어둠이 짙게 내린 산길은 주위가 칠흑처럼 어두웠고 한참을 가도 숲 길 뿐일 것만 같던 그 곳에 마을이라고 부르기엔 몇 채 안 되는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적막하다 못해 외로워 보였다. 고요함과 대조적으로 친구의 집은 유달리 밝았다. 나를 환영해 주는 듯 했다. 휠체어에 누운 채로 맞이하는 친구의 모습은 마냥 행복해 보였다. 교통사고로 전신 마비가 되어 누워 지낸지가 벌써 14년째 이다. 지치고 좌절했을 만도 하건만 그의 입가에는 늘 잔잔한 미소가 흐른다. 나는 반가움에 친구의 목을 껴안고 얼굴을 부볐다. 이 친구와 나만의 독특한 인사법이다. 우리에겐 악수는 필요 없다. 친구를 사랑하는 나의 뜨거운 체온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오직 얼굴 뿐이기에….
나를 위해 정성스레 준비한 자연 송이버섯과 산밤을 넣어 지은 밥으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모처럼 옛이야기에 산 속 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다. 참으로 오랜만에 장작으로 지핀 보일러 방에서 이름도 모르는 산짐승들의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눈을 떴을 때는 햇살이 방안을 가득 채운 후였다. 먼 길 오느라 좀 피곤했던가 보다. 아침 식사시간까지 좀 여유가 있어서 잠시 집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가을인데도 산 속의 아침 공기는 꽤 차가웠다. 텃밭의 가지 나무에는 채 크다가 만 가지가 몇 개 붙어 있고 밭두렁에는 호박덩굴이 찬 서리에 줄기만 앙상히 남긴 채 누런 호박을 군대 군대 매달고 있었다. 그 중 몇 개는 산짐승들의 먹이 감이 되었는지 덩그러니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 곳 사람들은 농사지으면 다람쥐, 너구리, 멧돼지들과 나눠 먹는다고 한다.


“졸 졸 졸…" 물소리를 따라 앞마당 아래로 내려가 보니 조그마한 실개천이 방금 떨어진 낙엽을 띄우고 물 속에는 송사리가 떼지어 놀고 있었다. 모든 게 때 묻지 않은 자연의 모습이었다.
친구의 방 한쪽 벽으로 큰 창문이 있다. 창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큰 액자라고 부르고 싶다. 그 액자의 화폭에는 가을이 한창이었다. 이따금 수북이 쌓여있는 낙엽 위로 다람쥐가 나타나기도 하고 나뭇가지 위로 산비둘기가 쉬어 가기도 한다. 친구와 얘기 나누는 순간에도 낙엽은 계속 떨어지고 다람쥐가 창문턱을 타고 어디론가 바삐 지나가곤 했다.

 

눈꽃이 만발한 겨울산은 더 멋있단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사계절 모두 아름답다고 하는데 자연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이 아름다워서이리라. 명문대학을 나와서 한 때는 국가공무원으로, 교직자로, 종교 지도자로, 남 못잖은 젊은 시절을 보냈던 그가 낙심하고 절망했을 만도 하지만 그의 눈은 오히려 광채가 난다. 유일하게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그의 얼굴표정은 마치 내일 명절날 입을 새 옷을 품에 안고 들떠 있는 소년 같은 표정이었다. 입가에 번지는 미소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아량이 깃들여져 있고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눈망울은 늘 희망에 들떠 있는 느낌을 준다. 나를 만났다는 기쁨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도 그의 평온함은 사라질 줄 몰랐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친구는 오히려 건강하던 시절보다도 더 평안을 만끽하고 있는 것일까? 모든 고통과 아픔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얻는 것일까?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