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원장
“지면이 주는 예술성 독자 매료”
치의신보가 사십 선상의 역사를 가졌다는 것은 한반도에 치과의사의 탄생과 동시에 치의신보가 발간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근대문명의 3대 발명품 중 하나인 금속활자를 세계최초로 만들 정도로 기록문화를 중시했다. 1377년에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은 1456년에 만들어진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보다 80년이나 앞선 것이다.
또한 몽골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대장경은 고종24년(1237)에서 고종 38년(1251)까지 16년이란 세월에 걸쳐 만들어졌으며, 그 팔만대장경은 지금도 그대로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
글자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여 목판 81,258여장으로 수십 년에 걸쳐 만든 유려한 서체의 대장경은 우리민족의 자랑이며, 진시황이 만든 그 많은 유물보다도 더 값지다고 필자는 감히 주장한다.
치의신보가 탄생할 즈음의 우리 치과의술에 대한 교육수준은 매우 열악했을 것이며, 개업의 등은 치의신보를 보며 의술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음과 동시에 협회나 동료들의 소식도 알았을 것이다.
그 당시에 치과저널은 오직 치의신보 하나밖에 없었으며, 그만큼 치의신보의 역할은 지대했을 것이다. 또한 치의신보를 만들면서 감당해야할 재정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필시 수많은 사람들의 봉사와 희생에 의해서 운영되었을 것이다.
저널을 만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실감이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월간 로타리 코리아, 월간 우먼라이프, 주간 전국아파트신문을 발행하고 있기 때문에 저널발전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치의신보는 이러한 어려움을 감내하고 41년의 역사를 함께 해왔다.
오늘날의 치의신보는 신문의 내용이나 편집, 재정 모두가 최고로 훌륭한 잡지이다. 오늘날 컴퓨터가 잡지의 일부를 대신해주고 있으나 지면이 주는 여유로움과 예술성은 영원히 독자를 매료시킬 것이다.
치의신보의 훌륭한 편집에 감사를 드리고 앞으로도 계속 우리치과 의사들의 자부심을 지켜주길 부탁드린다.
원준영 원장
“독자 참여 활성화 방안 모색돼야”
치의신보라는 존재는 우리 치과의사들에게 있어 어떤 것일까?
환자를 진료하는 대부분 치과의사들의 일상에 있어 더위를 피할 그늘과 쉼터를 제공해 주는 시골마을의 느티나무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치의신보가 벌써 41주년을 맞았다고 한다. 사람으로 치면 한참 활기찬 인생을 살아갈 나이에 있는 치의신보에 대해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몇 가지 바램을 적어본다.
첫째, 대다수의 독자들이 개원의들이므로 이들이 치과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정보 즉 치과업무와 관련된 법률이나 세무, 보건행정관련 사항을 분야별로 소개해 주고, 상담도 받을 수 있는 코너가 상설화 되었으며 하는 바람이다.
둘째는 매년 개원을 하는 수많은 치과의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코너가 있었으면 좋겠다. 개원을 하는 과정에 필요한 법률적인 사항, 인테리어나 직원선발 관한 방법과 개원 선배들의 노하우등을 알려주고, 개원절차에 도움을 주는 정보를 시리즈로 연재하면 한 번 보고 버리는 신문이 아니라 스크랩을 해서 지속적으로 다시 찾아보게 되는 정보의 보고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독자의 참여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방안이 더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나 치협의 정책에 대해 치과의사로서 찬반의견을 제시하고 토론이 가능한 코너를 마련하는 것도 치과의사의 참여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또한 현재 독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코너가 릴레이수필 등 일부에 한정되어 있는데 독자들이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치과의 직원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게재하는 ‘우리 치과 가족 뽐내기’같은 코너도 신설해서 매회 2~3군데 치과사진을 실어 보는 것도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해본다.
넷째는 현재 전체 지면의 약 3분의 2정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