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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착한 마녀의 저주/손현아 강북삼성병원 치과의사


새해가 펼쳐졌다
새로움이라는 설레임
선택이라는 희망을 즐기자

 

우리는 늘 선택의 순간에 산다. 물을 마실까 말까? 거울을 한 번 볼까? 잠시 밖에 나갈까 말까? 점심은 혹은 저녁은 무얼 먹을까? 참, 화장실은 지금 갈까? 조금 있다 갈까? ○○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지금 할까? 등등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 아니 수백 가지 선택의 기로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다. 그 순간 마음의 칼을 즉시 빼어 반짝이는 빛 사이로 빠르고 명료하게 내리쳐야 한다. 구차스럽고 번거롭지만 선택해야만 하고 그 선택의 순간이 너무도 짧아 늘 아쉽고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 삶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조금 물러서 생각해 보자.


모든 것이 규정되어 있고 일률적이라면 우리의 삶은 마치 기계처럼 단순하고 또한 우스울 것이다. 막연함과 즐거운 방황 속에 삶의 즐거움이 가득 차 있다. 이것과 저것 또는 그 사이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에 삶의 경이로움이 숨어 있다. 선택이라고 하는 것이 늘 쉽지 않고 차라리 없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느껴지기가 다반사이지만, 선택은 축복이다. 착한 마녀의 저주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무시무시한 저주 때문에 죽을 만큼 힘든 적이 두 번 정도 있었다. 두 번 다 대학생활과 관계된 일이다. 그만큼 대학생활이 파란만장했었던 것 같다. 한 번은 대학교 합격 발표를 했을 때였다. 지원했던 대학에 떨어져 별 기대를 하지 않고 후기에 지원했는데 덜컥 붙어 버렸던 것이다. 문제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과였다는 것이었다. 대학은 서울에 있는 이름 있는 대학이라 포기할 수도 포기하지 않을 수도 없었던, 참으로 고통스러운 선택의 시간이었다.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이나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볼 때 포기를 한 후 재수를 하기도 무척 부담스러웠고, 관심없었던 그 과를 선택해서 평생 공부할 생각을 하니 너무도 막막했다. 마감시간까지 정말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고민을 하면서 차라리 죽은 듯이 잠들었다가 1년 뒤에 깨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동화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결국, 그 학교를 포기했다.


그렇게 고민 끝에 결정하고 재수를 해서 들어온 대학생활 5년차, 그러니까 본과 3학년쯤에 내 적성과 과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선택을 해야 했었다. 내 삶의 전공을 무엇으로 삼아야 할까라는 26년 인생 전반과 앞으로의 인생에 걸친 참 어려운 질문이었고 선택이었다. 휴학, 자퇴, 전과까지 고려하며 검은 머리칼이 빠르게 하얗게 변해갈 정도로 모진 갈등과 방황을 했다. 이 역시 결정해야 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짧은 시간 안에 농밀하게 진행해야 했다. 마법에 걸린 공주처럼 제한된 시간 안에 날개옷 한 벌을 짜서 내어 놓아야 했다.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다면 전공이라는 것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라는 어렵게 길어 올린 휘장을 가슴에 달았다.


새해가 펼쳐졌다. 이맘때 특히 새로운 선택과 결심을 하게 된다. 이미 많은 선택에 지쳐버린 우리는 이 선택의 시기가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할 수도 있지만 다시 한번 선택은 희망이다. 삶이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게으르고 안일한 또 하나의 선택이며 그러한 삶은 이미 죽은 듯 그저 숨 쉬는 무덤이다.
새로움이라는 가슴 떨리는 설레임과 선택이라는 바지런한 생명력을 즐기자. 때론 짓궂은 착한 마녀의 귀여운 저주조차 사뿐하게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