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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53번째 이야기 또 다른 세상 / 김윤희

 


세상은 하나가 아니다
참으로 많은 세상이 있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단지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또 다른 세상.’
지금은 없어져버린 커피숍 이름이다. 우리 딸들이 어렸을 때 시내 쇼핑을 나갈 때마다 자주 들르곤 했었다. 커피 맛이 좋았던 걸로 기억하지만 무엇보다도 ‘또 다른 세상’이라는 가게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또새’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누가 이런 이름을 생각해 냈는지, 어떤 뜻으로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 궁금했지만 끝내 물어보지는 않았다. 주인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세상’보다 스스로 생각해 보는 ‘또 다른 세상’이 내겐 더 소중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은 하나가 아니다. 참으로 많은 세상이 있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단지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살아가면서 경험해 보는 세상, 우리가 꿈꾸는 세상, 날마다 대하는 환자들에게서도 그만큼의 세상이 보인다.


내게도 얼마나 많은 세상이 있었는가. 학창시절 고향을 떠나 겪었던 서울의 대학생활이 가장 처음 다가온 또 다른 세상이었다. 그때는 낯설고 힘든 세상이었다. 나만 외롭고 힘들게 느껴졌지만, 또 다른 세상을 향한 꿈이 나를 지켜 줄 수 있었다.
결혼으로 다가온 또 다른 세상, 개업하며 겪었던 새로운 경험, 엄마가 돼서야 보이기 시작한 새로운 세상, 그런 저런 일들도 이제는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잠깐이지만 외국 생활에서 경험한 또 다른 세상은 좀더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남편의 미국 연구기간 중 경험했던 몇 개월의 미국 생활, 어린 딸들을 데리고 다녔던 세인트 루이스의 여러 장소, 톰 소여와 함께 할 수 있었던 한니발이 이제는 사진 속에 추억으로 남아있다.


외국 생활은 그곳을 떠나옴으로써 일상이 되기보다는,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추억으로 남아 일상을 자극하는 활력소가 되었다. 뉴질랜드에서 보낸 1년도 새로운 세상을 많이 보여 주었다. 자연과 더불어 훨씬 더 천천히 가는 그들의 시간, 이국땅에서 생활하는 이민자들의 애환, 특히 이번에는 어린 딸들에게 처음 펼쳐진 외국 학교생활이 더 많은 경험을 펼쳐주었다.
처음에는 낯설고 두려워하던 딸들은 이내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였다. 그 적응이 딸들 자신에게는 어떤 과정이었는지, 지켜보는 엄마로서도 다는 알지 못한다. 언어도 서툴고 친구도 없는 학교에 와서 처음에 얼마나 무서웠는지, 친절한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지, 수료식에서 하는 큰 딸의 발표를 듣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엄마는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있었으니, 학교라는 세상에서 딸들이 겪는 경험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딸들에게는 딸들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그때 절실하게 느꼈다.
그런 딸들이 이제 또 다른 세상을 찾아 집을 떠나기 시작했다. 아직 고등학생이라 너무 이른 게 아닌지 마음 졸이는 일이 잦지만, 집에 붙잡아 둘 수는 없는 세상이 되었다. 어쩌랴, 엄마는 도와주지만 자신의 세상은 자신이 찾아야 하는 것을… 그저 믿음으로 지켜보고 격려해 줄 수밖에는.
딸들이 떠나고 나면, 내게도 새로이 적응해야 할 또 다른 세상이다. 치과 속에도 세상이 많고, 치과를 벗어나도 세상이 많다. 세상이 하나가 아니라서, 만나고 부딪히게 되는 그 많은 세상들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