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 대한 국가정책이
치과영역에서 확실히 뒷받침돼
마음 편히 치료를 받았으면…
그림같이 펼쳐진 삼각산 자락에 위치한 국립재활병원이 제가 근무하는 일터입니다.
상쾌한 아침, 출근하는 길엔 휠체어 혹은 기타 보조기구들에 의지해 운동하시는 환자분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환자분들은 뇌병변 장애, 척수장애를 가진 분들입니다.
마음껏 손발을 움직이실 수 없는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정도로 뇌손상을 받으신 분들도 상당수입니다.
‘어디에서 누구를 위해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 병원에 발을 들였지만, 생각처럼 환자분들과의 만남이 쉽지는 않습니다.
손놀림이 자유롭지 않으시기에 구강위생상태는 지극히 열악해 구강검진 자체가 고역일 때도 있고, 체어로 이동하시는데 일반인에 비해 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치료 도중에도 돌발 상황이 종종 발생합니다. 특히나 뇌졸중, 뇌출혈, 정신지체 등으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환자들에게는 그들이 하는, 알 수 없는 말들에 처음에는 시간을 갖고 귀를 기울였지만 차츰 차츰 소홀해졌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어쩌면 망각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환자는 젊은 나이의 뇌졸중 환자였습니다. 한창 바쁜 시간 약속시간에 훨씬 늦게 와서 왜 이리 늦었냐고 물었더니 제 시간에 왔는데 약속기록부에 뭔가 잘못이 있었을 것이라며… 어눌한 목소리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환자에 완전히 지쳐버렸습니다. 핸드피스 사용을 멈추는 잠깐 잠깐의 시간마다 치료 진행 상황에 대해 질문을 쏟아내고 그 질문에 관해 설명했는데도 진료 후에 같은 질문을 반복하던 환자… 짜증이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름 성실하게 답변하였지만, 말투와 표정에서 귀찮아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간병인 아주머니는 젊은 사람이 너무 열심히 일하다가 쓰러져서 참 안되었다고 살짝 귀띔해주셨습니다. ‘무슨 일요?’라고 물으니 독립영화 촬영감독이라고 했습니다. 마침 그날 방송에서 독립영화프로그램의 마지막 방송으로 그 영화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늦은 시각이지만 영화를 봤습니다. 가족들에게 상처를 갖고 있는 주인공들이 새로운 가족을 이뤄가며 살아가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였습니다. 왠지 그 환자분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음 내원 시 이전 진료는 괜찮았는지, 아픈 곳은 없었는지 질문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 컨디션이 영 안 좋다면서 친구가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다음 주면 인공호흡기를 떼낸다고…. 그래서 자신의 몸이 더 아픈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손도 제대로 못쓰는데 카메라를 다시 잡을 수 있을까 염려스러웠지만, 영화를 봤다고 말하는 저에게 무척 반가워하면서 손 때문에 촬영이 불가하다면 연출 쪽으로 일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이해하기 힘든, 그저 까다로운 환자였던 그가 과거엔 무언가를 열심히 했었고 희망을 여전히 놓지 않고 있는 ‘사람’으로 다가왔던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새로 환자분이 오시면 병동이나 외래 차트를 유심히 읽어보고 이야기 나눕니다. 언제 어떤 이유로 발병하셨는지, 가족들의 상황은 어떤지, 경제적인 상황은 어떠한지 등등….
환자에 대한 전인적인 이해에서부터 관계를 맺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괴한의 습격을 받아 흉기로 머리를 다친 황○○ 아주머니, 발병 전에는 지극한 효자였다는데 뇌졸중이 온 이후로 의사표현조차 힘들어 병약한 어머니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김○○ 아저씨, 태어났을 때부터 뇌성마비를 앓았고, 수차례의 낙상과 교통사고로 척수손상의 합병증까지 있어 목 위로만 움직일 수 있는 이○○씨, 학교에서 창문을 닦다가 떨어져 사지마비가 된 17세 소녀 ○○양 등등…. 한분 한분마다 저마다의 기구한, 가슴 아픈 사연들이 있습니다. 삶의 무게에 눌려 고통 받은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