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1호에 이어>
그렇게 마음을 편히 하고 다시 길을 가기 시작했지만 이번에야 말로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손전등의 불빛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결국은 꺼져버린 것이다. 아마도 가방 안에서 이리저리 구르다가 켜져있는 상태였나 보다. 정말 큰일이었다. 이미 체력은 거의 바닥이 나 있었고 주변에는 불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산속에 어디인지 모르는 곳에 있었다. 가만히 서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기에는 여름 점퍼를 입은 복장에 비해 추위가 너무 심했다. 지금까지 흘린 땀이 마르고 또 얼기까지 한다면 최악의 경우 동상을 지나 동사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물론 기다리면 우리 보다 늦게 출발한 팀과 만날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만난다는 보장도 없는데다가 그들의 플래시 불빛에 의지한다 하더라도 지금의 체력이라면 절대 속도를 맞출 수 없을 것이다. 바위 투성이의 산에 눈과 얼음까지 얇게 쌓여있는 길을 불빛 없이 올라가기도 어렵지만 내려가기는 더욱 위험했기에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처해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일단 아무 바위나 걸터 앉아서 하늘을 잠시 바라봤다. 달도 별도 눈에 띄지 않는 물먹은 하늘. 그래 그러고 보면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다. 어려서 부터 난 늘 남들의 뒤통수를 보면서 뛰어야 했다. 앞지르기는 꿈에도 생각 못 하고 그저 너무 많이 뒤쳐져서 친구들이 나의 존재를 잊고 어딘가로 가버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 동안 늘 아등바등 뛰면서 살아왔지만 결국 또 다시 이런 꼴이다. 난 조금도 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모습에 지쳐서 그녀는 기다리고 참고 노력하다가 결국은 내 곁을 떠났다.
눈물이 핑 돌았다. 주변의 어둠이 왈칵하고 내 가슴 안으로 들어옴을 느낀 순간 터지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 자신의 초라함과 나약한 스스로가 너무나 불쌍하고 안쓰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옆에 있었다면 붙잡고 넋두리 하고 싶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었다고 항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한 적도 많았다고. 결국 또 다시 이런 모습으로 여기에 내 팽겨졌지만 노력했었다고 이런 모습이 전부 내 잘못만은 아니라고. 울음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언제나 괜찮은 척 웃고 다녔지만 가면을 빼앗기고 발가벗겨진 체 내동댕이쳐지자 내면 깊숙이 있던 아픔과 슬픔은 걷잡을 수 없이 바깥으로 밀려나왔다. 주변이 어두운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만약 밝았다면 스스로를 숨기기 위해 동굴이라도 찾아야 했을 것이다.
눈물이 얼어붙어 볼의 감각이 없어질 때쯤 의외로 어느 정도의 체력이 회복되었다. 하지만 잠시 쉬고 일어났다고 해도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산을 마저 오르든 내려가든 추위를 견디면서 그 자리에 머무르든 셋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결정을 하기 전 시간을 알고 싶어 습관적으로 주머니의 시계를 꺼냈을 때 난 잠시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두툼한 알람시계에는 시계를 보기위한 작은 전구가 달려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것이든 이집트에서 산 것이든 둘 중에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그것이 지금 내 주머니에 있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그 알람시계를 사러갔을 때도 전구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단지 작은 크기와 싼 가격 때문에 선택했었는데…. 그 많은 사건과 우연들 중 스스로가 의도한 상황은 단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시계를 잃어버렸을 때도 사기위해 골목을 헤맬 때도 사가지고 돌아올 때조차도 내 입은 쉬지 않고 불만을 말하며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지금 그 토록 투덜거리고 짜증나했던 상황들로 인해 위기를 넘기게 된 것이다.
비록 밝지는 않았지만 바위의 위치만큼은 확실하게 가르쳐준 시계의 작은 불빛 덕분에 난 무사히 시나이 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시나이 산의 일출은 상상 보다 훨씬 멋있었다. 짙게 낀 구름, 바위투성이의 산, 그리고 올라올 때 그 토록 나를 괴롭히던 눈과 얼음조차도 환상적인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아마 저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지금 그 순간만큼은 나도 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