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가 가장 좋았는지
묻는 말에 난 언제나
‘지금’이라고 답한다
열두살 무렵의 생각으로, 막연히 스물여섯쯤의 나이면 삶이 방향을 잡고 평화로울거라고 생각했었다. 아마도 멋져보이던 영어선생님 영향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스물여섯즈음은 내가 예전에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모른채 지나가버릴만큼 변화와 갈등을 겪었던것 같다.
졸업하고 진로를 결정하고, 원하는 대로 안돼서 좌절하고… 개원후 누구나 그렇듯이 반복되는 일상으로 시간이 흐르고 결혼, 출산도 자연스럽게 지나왔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기전엔 귀로 들리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울음소리가 명치아래 어디쯤에서 들리게 되고 세상일의 판단기준이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는 것인가"로 되어간다.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게 아름다워보이고 자신의 일에 최고인 사람에게 기죽던 내가 조금씩 다른 사람도 보이고, 평화의 소중함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연의 힘 앞에 겸손해짐을 느끼게 된다. 이런 모든 것들이 젊음 대신에 시간이 준 선물이라 생각한다. 좋거나 혹은 나쁜 기억일지라도 세상일에 헛된 일은 없어서 내게 추억이 되기도, 교훈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생각으로 살다보니 너무 성급한 판단으로 사고를 치는 경우도 있다. 비싼 의료기를 덜컥 사거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여러개의 보험상품에 가입하거나… 그런 경우에도 난 늘 긍정 평가한다. 좋은 진료와 든든한 노후대책을 위해 잘 했다고… 운이 좋은지 주변엔 늘 좋은 사람들이 있다. 나쁜(?) 무서운(?) 환자도 십오년 진료에 손에 꼽을 만큼 만나본거면 행운아가 아닐까? 비록 그때마다 손을 떨며 원장실에서 감사의 기도로 진정하려 애쓰지만… 내용은 “하느님, 저 사람이 제 남편이 아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둘러보면 감사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사랑을 주는 가족들. 일 할 수 있는 건강. 오랫동안 같이 일해 온 병원 식구들. 그 많은 치과중에 우리 치과로 진료받으러 오는 환자들. 이렇게 담는 그릇을 줄이면 넘쳐날 행복이 욕심으로 커져서 많은 사람들이 늘 불행한 것 같다.
그래서 언제가 가장 좋았는지 묻는 말에 난 언제나 “지금"이라고 한다. 시간이 더 흘러 늙는다해도 늘 웃는 모습과, 평화로운 생각으로 예쁜 주름을 갖고 싶고, 자주 떠올릴 추억을 남기고 싶고, 아름다운 음악과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엔 눈물을 흘리며 감동받고 싶다. 거기에 다시 인생을 산다면 잘 해보고 싶은 후회가 몇 방울 더해져야 진짜 삶이 아닐까?
내가 꿈꾸는 개인적인 삶은 참 소박하지만 세상을 향하는 기도는 늘 높고도 깊다. 건강하고 열심히 일해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길 원하고, 어렵고 힘든 일에 부딪혀 이겨낼 용기를 갖기 원하고, 나보다 먼저 삶을 시작한 사람들의 경험을 존중하고 젊은이의 열정을 칭찬할 수 있는 사람으로 편견을 멀리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생명이 존중받고 어떤 이유로든 다른 이의 생명을 뺏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세상이 아름다워져 더 이상 평화를 위한 기도를 할 필요가 없고, 소중한 생명의 희생으로 우는 일이 없길 바라는건 불가능한 일일까?
과학이 점점 발전해 인간의 교만이 바벨탑처럼 높아간다해도 자연과 신 앞에 우리는 그저 약한 존재이다. 그런 겸손으로 살아가다 정말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듯이 하늘로 간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
내게 주어진 시간이 남겨줄 것들이 그런 것이길 간절히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