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쾌한 기분으로
주말저녁을 갈무리 하며
다음 주에도 또 산을 찾고 싶다
그 동안 발행했던 어음과 수표의 만기가 4월말이 되자 돌아왔습니다. 그 동안은 어떻게 버텨냈는데… 그 전까지는 채권자가 믿어주던 변명들도 이제는 통하지 않네요. 더 이상 버티기도 힘들어서, 그리고 신용부도마는 막기 위해서 4월 마지막 주에 급기야 선언했습니다. (아니, 실제로는 꼬리를 내린 거라고 볼 수 있죠.)
“그래, 이번 주말에는 등산 간다. 자 어디로 가지?”
2008년 새해를 맞이 하면서 결혼 5년차에 접어드는 우리 부부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습니다. 저는 영어 공부를 하고, 집사람은 운동을 해서 체력을 키우도록 하자고. 그리고 부부가 주말이 되면 등산을 꼭 가자고! 주말 계획에서 우선 순위 1번을 등산에 두자고.
하지만 4월 마지막 주가 되기 전까지 모두 16번의 일요일이 지나갔지만 부부 동반 산행은 미기록 상태. 물론 16번의 일요일 중에서 몇 번은 결혼식으로, 또 한두 번은 가족 행사로, 한 두 번은 병원 세미나로 넘어갔죠. 게다가 비가 와주기도 했구요.
하지만 핑계로 넘기기에도 16고개는 험난했습니다. 또 내가 너무 구차해지는 것 같기도 했구요. 그래서 17번째 고개에서는 용단(?)을 내린거죠.
전날 저녁에 싼 김밥과 삶은 감자, 그리고 토마토를 넣은 배낭을 메고 언양 석남사를 품고 있는 가지산으로 산행을 떠났습니다.
가지산은 결혼 전에도 남동생과 몇 번 올라본 산이라 등산로 한 두 개는 기억하고 있었죠. 그래서 다음에는 쉽게 등산 얘기를 집사람이 꺼내지 않게끔 조금 힘든 등산로로 잡으면 어떨까 유치한 기획의도를 품고서 등산계획을 짠 것입니다. 결정적인 두 가지를 빼 두고서 말이죠. 첫째, 나는 평소에 운동과의 간격(?)을 꾸준히 유지했다. 둘째, 집사람은 운동을 항상 가까이 했다.
산행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집사람이 잠시 쉬자고 하네요. 흐흐흐, 기획의도대로?
좀 더 올라가다 마주친 50대 산악회 분들은 “야, 젊으니까 이 코스로 올라가네. 우리야 지금처럼 내려는 가도 이 길로 올라가지는 못하는데.” 한 마디 건네고 가시네요. 또 한 번 흐흐흐.
‘이제 곧 지치겠지.’ 하지만 좀 체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내가 메고 있는 배낭만 자꾸 뒤로 미끄러집니다. 분명히 조금씩 먹어서 더 가벼워져야 하는 가방인데 무게는 그대로구요.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는데도 체온이 쉽게 식지도 않고, 혀가 점점 길어지는 기분마저 듭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집사람은 처음 그대로네요….
결국 집사람이 한마디 건네네요. “이군, 힘들면 얘기해. 가방 들어줄게!” 한 마디 붙여서 “같이 헬스가자고 할 때 듣지.”
그 날 산행의 마지막 코스는 언양에서 가까운 본계 한우 고기를 먹으러 들르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있으면, 정부에서 안전성을 보장하는 미국산 앉은뱅이표 소고기가 들어오기 전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마지막 소고기’라는 생각에서 보다 맛있게 먹을 수 있었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다음 주에도 산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습니다. 근래에 집사람과 이렇게 많은 대화를 가져본 적이 있었는지, 이렇게 상쾌한 기분으로 주말저녁을 갈무리 해본 적이 있었는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다음 주에도 가지산에 가자. 내가 더 쉬운 코스 알고 있어.”
“오늘도 뭐~ 힘들지 않던데” “….”
갑자기 헛기침을 하게 될 때가 점점 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