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생활의 분주함에 젖어
마음속 깊은 곳에 넣어뒀던
소망들을 다시 꺼내 보았다
지난 여름 나는 내가 속해 있는 기독학생회를 통해 몽골의 울란바토르에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개인적으로 몽골은 세 번째 방문이었지만,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풍경은 다시 보아도 변함없는 놀라움과 감탄 그 자체였다.
초원 위에 방목된 염소와 양 떼는 한 폭의 근사한 그림과도 같았고 그 위로 펼쳐진 높은 하늘과 구름 또한 형용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초원에서 올려다 본 밤하늘의 별들은 또 어찌나 촘촘하던지… 어느덧 나는 물만 넉넉하고 화장실만 깨끗하다면 이 곳에서 좀 살아도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제법 떨어진 지역의 어느 작은 교회에 짐을 풀었다. 진료를 시작하려고 보니 아뿔싸, 이동식 핸드피스 장비에 꽂아야 할 시린지 팁을 놓고 온 것을 알았다.
우리는 즉석에서 고안한 방법으로 제법 쓸만하게 만들어 놓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는 방사선 장비도 없이, 고압멸균기도 없이 그렇게 부족하기만 한 진료를 시작하였다.
그 곳 주민들의 구강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고 대부분은 발치가 필요한 환자였다. 우리는 급히 보존 체어를 하나 줄이고 그 대신 발치 체어를 하나 늘렸다.
사실 하루 왔다 가는 우리 팀이 해줄 수 있는 일은 발치, 간단한 보존 치료, 치석 제거 등이 전부였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열심히 뛰었다. 우리는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맡아 열정적으로 그리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산들산들 부는 건조한 바람 탓에 땀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게 신기했다.
아 몽골! 이렇게 쾌적하다니!
진료팀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사이, 한 쪽에서는 1,2학년 학생들이 알록달록 풍선을 불어주며 아이들을 모아 불소도포와 잇솔질 교육을 해주었고, 또 다른 쪽에서는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즉석에서 프린터로 인화해 주어 현지인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었다. 아 우리 병원에 이런 서비스가 있다면 환자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알고 보니 몽골은 우리나라와 너무나 가까운 나라다. 울란바토르 시내에 달리는 자동차 둘 중에 한 대는 한국산인 것 같다. 시내버스는 들여오고 나서 도색을 안했는지 ‘종로3가’라고 쓰여 있는 게 무척이나 반갑다. 길가의 사람들 얼굴까지 한국인과 똑같이 닮은 것이 영락없는 우리나라 어느 시골 읍내의 20년 전 풍경이다. 버스를 타고 달리며 나는 몇 번이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 온 것 같은 야릇한 공상에 잠겼다.
진료를 마친뒤 우리는 숙소로 돌아오기 위해 다시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서너 시간이나 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거대한 반원 모양의 또렷한 쌍무지개를 보는 행운을 누렸다. 비가 부족한 이 나라에서 쌍무지개를 본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겠지 아무렴.
어쨌든 계획된 진료를 무사히 마치긴 했지만 이런저런 아쉬움이 남는다. 잠자리에 들기 전 우리는 졸린 눈을 비비며 내년에는 정말 잘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나는 우리가 그곳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거나 무언가를 베풀고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귀한 시간들을 통해 학교생활의 분주함에 젖어 한참 동안 마음속 깊은 곳에 넣어두었던 소망들을 다시 꺼내 볼 수 있게 되었다.
서울로 돌아와 인천공항에 내리니 습한 기운이 꼭 싸우나 온 것 같아 낮은 신음 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몽골의 건조한 날씨에 과도하게 적응한 탓이리라.
요즘 나는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어떻게 하면 이 여행에 매년 참여할 수 있을까 심각하게 궁리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