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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잊음 혹은 망각(Forgetting or oblivion) 김춘추

리스 신화를 보면 지하세계 하데스에서는 죽은 후에 영혼이 건너는 강이 있다. 레테의 강 또는 망각의 강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이강을 건너게 되면 지상세계에서의 모든 기억을 잊어 버리게 된다고 한다. 새 삶을 시작하는 시점인 사후세계에서 망각은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짧은 삶을 반추해보면, ‘건망증"이라고 불리는 증상을 겪는 상황이 많다. 방금 받은 편지를 손에 쥐고 찾는가 하면, 방금 읽은 책을 어디에 넣어 두었는지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파다하다. 의도하지 않는 기억 상실을 경험할 때에는 참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사소한 실수로부터 해서 시험보기 전날 꾸역꾸역 채워넣은 지식들이 마구 새어나와 불안해한 경험도 있다.


5분전에 읽은 문장이 생각나지 않고, 불안감만 고조되어 시험지를 받은 시점에서는 눈앞이 새하얗게 변해버리는 경험도 한다. 이럴 때마다 내 기억력를 탓하거나, 기력을 탓하기도 한다. ‘왜 이렇게도 잘 잊어버리는지…."


하지만 좋지 않은 기억이 생기면, 그 기분이 나를 지배하게 되고 씻지 못할 정도로 오랜 시간 영향을 주기도 한다. 물론 그 기억들은 점점 희미해지지만, 영원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문득 문득 떠올라 나의 화를 돋우는 상황을 만들게 한다. 제일 기분 나쁜점은, 기분좋은 상황에 기분 나쁜 상황의 기억이 떠오르는 때이다.


기분 나쁘게 헤어진 애인, 억울하게 누명을 쓰게된 기억,


나를 고자질한 친구 등등.


이 모든 기억들이 망각을 원하지만 가끔씩 머리를 맴돌며 나를 귀찮게 한다. 실로 모두다 레테의 강에 던져버리고 싶은 것들이다. 모든 사물 뿐 아니라 정신적인 작용에도 작용과 반작용이 존재하는 듯하다. 점탄성과 같이 강하게 당기거나 밀려하면 갑자기 강한 힘이 작용해서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방향의 움직임에 방해를 가하는 것 같다. 실제로 강하게 기억하고자 하는 것들은 쉬이 잊어버리고, 정말 잊고 싶은 것들은 강하게 뇌 속 고랑에 저장되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 무언가 노력을 하면 할수록 지치게 되고 상심하게 되는 것이 참….


신기한 일은 이때부터 일어난다. 지칠대로 지쳐서 자포자기가 된 상황에서 모든 것은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내일 시험은 아는데 까지만 보자"라는 마음으로 일찍 집에 들어가 잔 다음날은 소소하게 스윽 읽었던 부분도 모조리 기억난다. ‘아, 미워하는 것도 지친다. 이제 모르겠다"라는 마음을 품는 순간 안 좋았던 기억은 하나 둘씩 머리를 떠나게 된다. 실제로 모든 안 좋은 기억은 문득 문득 찾아와 안주거리로 삼을 수 있는 추억으로 변신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자연의 섭리를 따라 흐르는 것이 오히려 플러스로 작용하는 것 같다.


실연을 한 사람은 참 많은 시간 애태우며 가슴 아파한다. 수 일을 울며, 가슴을 태우며, 어서 잊기를 바라는 일이 많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의하면 가장 빠르게 회복하는 방법은 슬픔에 젖으면 슬픈대로 모든 것을 흘러가는 대로 맞기며 보내는게 가장 확실한 테라피가 아닐까 싶다.


가끔은 자연의 섭리를 너무나 무시하며 사는 듯한 나를 바라보며 자책을 하기도 한다. 무언가 인위가 가해지면, 탈이 나는 일이 많기도 하는데… 보태어 지면 보태지는대로, 덜어지면 덜어지는대로… 즐거우면 즐거운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심적인 카타르시스를 이루며 사는 삶이 가장 나에게 좋은 삶이 라고 생각한다.


‘고진감래"다. 어려운 일은 후에 즐거움이 온다. ‘호사다마"다. 좋은 일에는 언제나 힘든 일이 있다. 바이오 리듬처럼 어쩔 수 없이 겪는 희노애락 삶의 일부라면 억지로 심리적 에너지를 쏟아가며 부작용을 겪는 것보다는 슬픔도 삶의 일부이며 언젠가 추억으로 남아 즐거운 청춘으로 책갈피로 남을 것을 생각하며 즐거움도 삶의 무게이자 윤회의 업으로 생각하는 것이 조금 더 자연스러운 사람으로 사는 첩경이 아닐까?


달은 차면 기울고, 기운 달은 다시 차오른다. 가뭄에 마른 강은, 여름이 지나면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