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공간, 그러나 많은 희망이 모이는 곳
일요일 오후 2시. 스무평이 채 못돼 보이는 공간에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이방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선진국에서 온 부티나는 관광객이 아니라 이 땅의 거칠고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기에 더욱 이방인 취급을 받는 외국인 노동자들.
아프고 시린 이가 있어도 비싼 진료비 때문에 치과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은 이들에게 일요일 오후면 어김없이 진료소를 열고 따뜻한 치과진료를 제공하는 치과의사들이 있다.
대전역 앞에 위치한 ‘대전 외국인 사랑의 진료소(회장 박정기)’의 자원봉사 치과의사들은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진료소를 운영하며 방글라데시,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중국, 몽골 등 14개국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기자가 찾아간 날에는 박윤혁(박윤혁치과의원)·금미연(금미연치과의원) 원장 팀이 치과진료봉사를 하고 있었다. 유니트 체어 3대가 설치된 단촐한 진료실에서 자원봉사 치과의사들은 정신없이 밀려드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가까운 친구처럼 맞이하며, 그들의 아픈 이를 하나하나 치료해 나갔다.
‘대전 외국인 사랑의 진료소’가 정식 출범한 것은 지난 2006년 7월. 대전공단 내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진료해 오던 대전기독치과의사회의 크리스천 치과의사들이 지난 2005년 공식사업으로 ‘대전외국인무료치과진료소’를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이 후 양·한방 의사들이 참여하기 시작하며 진료소의 공식 명칭을 ‘대전 외국인 사랑의 진료소’로 붙였다.
현재 23명의 치과의사와 30여명의 치과위생사, 10명의 치과기공사가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양방의사 49명, 한의사 17명, 자원봉사자 10여명이 진료소 운영을 돕고 있다.
치과진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진료소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기본적인 보철에서부터 스케일링 등의 예방적 진료까지 가능한 모든 치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매주 평균 40~50여명, 한달 평균 20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진료소를 찾고 있다.
한국 이미지 개선, 향수병 치료에도 한 몫
방글라데시에서 온 까이사르(39)씨는 부인 자하나라(29)씨와 함께 진료소를 찾았다. 이미 진료소의 자원봉사자들과 친분이 있는 듯 유창한 한국어로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15년 전 처음 한국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언어가 통하지 않아 무척 고생을 했다.
까이사르씨는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 와서 몸이라도 아플 때면 당장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며 “아파도 진료비와 불법체류 문제로 병원에 가기 힘든 우리 외국인들에게 사랑의 진료소는 큰 의지가 된다. 특히 진료소의 치과의사 선생님들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줘 감사하다. 이런 진료소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알리(30)씨는 스케일링을 받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동료 외국인 노동자를 통해 진료소를 알게 됐다는 알리씨는 진료소에 오면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더 좋다고 말한다.
알리씨는 “몸이 아플 때면 가족이 보고 싶다. 특히 인도네시아에 두고 온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다”며 “그래도 진료소에서 만난 친구들끼리 서로 고향이야기를 하다 보면 많은 위안이 된다”고 밝혔다.
‘대전 외국인 사랑의 진료소’는 진료봉사 이외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소통의 장이자 먼 타국에서 겪고 있는 향수병을 치료하는 ‘마음의 안식처’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대전이주노동자연대에서 일하며 외국인 노동자들과 진료소를 연계하고 있는 자원봉사자 김영호씨는 치과의사들의 자원봉사가 한국에 대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미지 제고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치과의사들의 봉사진료를 통해 작업장에서의 갖은 억압과 차별로 인해 생긴 외국인 노동자들의 한국에 대한 반감이 많이 저하되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진료소가 한국의 이미지까지 바꿔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는 매우 바람직하고 고무적인 일”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