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요. 다 손익계산이 있기 때문이죠.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요?”
봉사를 왜 하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뜻밖의 대답이었다.
‘아차, 헛 다리를 짚어나’하고 망설여지던 순간...
“좀 실망스러운 답변인가요? 하지만 저는 값진 인생 경험, 제 아이가 건강하게 나고 자라주는 것, 행복한 가정을 가진 것,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기쁜 일들이 모두 봉사에서 비롯된 ‘대가’라고 생각해요”라며 말을 잇는다.
이런 손익계산이라면 얼마든지 해도 좋겠다.
당찬 대답의 주인공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국제 협력의사로 자원, 에티오피아에 파견돼 의료봉사활동을 해온 신세대 치과의사 이의룡 씨(서울치대 ’02졸·33세)다.
지난 2006년 서울대치과병원 구강외과에서 수련을 마친 직후 군복무를 대신해 협력의사로 자원한 그는 지난해 11월 중순 2년 6개월 동안의 파견을 마치고 귀국했다.
현재는 일산 국립암센터 구강암클리닉에서 근무 중으로 오는 5월까지 남은 임기를 채우게 된다.
비록 군복무를 대신해 선택한 길이었지만 해외 오지에서 수년간 의료봉사를 선택하는 일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특히 결혼을 코앞에 둔 시점이라 더욱 막막하기만 했다고.
결혼식 후 아리따운 신부와 단 이틀을 같이 보내고 바로 16시간을 날아 검은 대륙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아내가 잠깐 동안 와서 함께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임신 후 한국으로 출국했기 때문에 첫 출산 때 아내 옆에 있어 주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도 못내 마음에 걸린다.
구순구개열 및 악안면기형환자 400여명 새 삶
에이즈 환자 수용 고아원서도 치과진료
그가 에티오피아 파견 직후 의료봉사를 한 곳은 경찰병원, 국립병원 등 현지의 여러 병원들로 주로 구순구개열 및 악안면기형환자들의 수술과 치과치료를 도맡아 했다.
2년 6개월간 그의 손을 통해 총 250여명의 환자들이 구순구개열 수술을 받았고 150여명이 안면기형 수술을 통해 새 삶을 찾았다.
또한 현지 병원 수술 외에 개인적으로 2주에 한번씩 에이즈에 걸린 고아들만을 따로 수용해두는 고아원을 찾아 발치와 레진, 크라운 치료를 해줬다.
“에이즈 환자가 출산을 할 경우 대부분 아이도 병을 물려받게 되는데 부모가 병으로 먼저 사망하고 나면 어린 아이들만 남겨져 고아원으로 보내집니다. 하지만 워낙 약해서 죽는 아이가 많아요. 해외로 입양 보내지는 경우도 많고요.”
그는 자신의 첫 아이가 태어나고 난 후엔 이곳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더욱 애뜻해졌다면서 한국으로 돌아 올 때 자신의 아이가 쓰던 보행기를 그곳에 있는 한 어린아이에게 주고 왔다고 했다.
에티오피아에 있는 동안 힘들고 마음 아픈 일도 많았지만 자신의 수술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많은 보람도 느꼈다.
“언젠가 구순구개열 수술을 해준 소년이 이마가 찢어져서 병원에 왔는데 걱정되는 마음에 왜 이렇게 됐냐고 했더니 친구들과 놀다가 다쳤다고 하더군요. 다친 상처에 대한 걱정보단 뿌듯하고 기쁜 마음이 더 앞섰어요.” 예전에는 외모 때문에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아 외톨박로 지냈던 소년에게 수술이후 친구들이 생긴 것.
이밖에도 안면기형 수술 후 약혼을 하거나, 결혼을 했다는 환자들을 볼 때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고.
치과재료 장비, 수술도구 턱없이 부족
환자 진료위해 2억여원 기금 손수 마련
하지만 현지에서의 의료봉사는 예상했던 것 그 이상으로 순탄치 않았다. 기아 등 생활환경이 워낙 열악하다보니 환자들은 끝도 없이 넘쳐나는데 반해 치과재료와 장비, 수술도구는 턱없이 부족하기만 했기 때문.
더구나 병원에서 수술을 하려면 환자 1인당 40만원 정도를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데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상황에서 이 같은 금액을 감당하기가 어려워 수술을 포기해야만 환자들을 볼 때면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