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동아일보 교육생활부 기자
얼마 전 배우 문근영 씨가 수년간 익명으로 수억 원 대의 이웃돕기 성금을 냈다는 사실이 밝혀져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는 2003~2008년 모두 8억5000만 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그가 위선이라며 비난하는 악플을 달기도 했다. 그러나 문근영 씨는 한꺼번에 거액을 내지 않았다. CF 수입이 생길 때마다 그 돈을 익명으로 쾌척했다. 순수한 마음이 없다면 이렇게 ‘주도면밀하게’ 다른 사람을 도울 수는 없을 것이다.
기부문화는 사람과 이 사회를 따뜻하게 만든다. 어디 기부 뿐이랴. 사회적 약자를 찾아 온 몸으로 하는 봉사활동도 휴머니즘을 논하자면 기부 못지않다.
많은 치과의사들이 무료 진료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불경기로 치과병·의원 경영상태도 좋지 않을 텐데도 약자를 생각하는 그 분들의 마음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베트남 전쟁에서 군의관으로 활동 중 우연히 맡게 된 언청이 환자를 치료한 게 인연이 돼 지금까지 제주도, 울릉도, 삼척, 구미, 진주, 안면도, 덕적도 등을 돌며 1000여 명이 넘는 언청이 환자를 무료로 고쳐줬다는 치과의사가 기억이 난다.
충남의 또 다른 치과의사는 1988년부터 교도소를 찾아다니면서 재소자들에게 무료 치과 진료를 벌였다. 그 의사는 1996년에는 구소련 체르노빌 지역을 찾아 방사능 피폭 청소년 200여 명에게 무료 치과진료를 했다고 한다. 그 후로는 중국 길림성의 중국동포를 대상으로 무료진료를 하고 있다.
대전의 한 치과의사 사진동호회는 해마다 독거노인들의 영정사진을 무료로 찍어준다고 한다. 이 동호회가 이 봉사활동을 한 계기는, 한 노인 환자가 치과에 왔다가 영정사진 촬영비용이 많이 든다는 푸념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봉사 동기가 너무나 순수하지 않은가?
한 치과의사 봉사단체는 1969년부터 40년 가까이 경북 칠곡, 경남 하동, 소록도 등 전국의 나환자촌을 돌며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독거노인, 중국교포,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외국인 근로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찾아다니는 치과의사 봉사단체들은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데도 왜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은 치과의사들에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적지 않은 시민들이 “치과의사들은 돈만 벌려고 하는 의사들이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임은 치과 진료가 건강보험 혜택에서 지나치게 많이 배제된 의료 환경에 있다. 그러나 그 피해는 치과의사들에게 가게 돼 있다.
만약 이런 시민들이 치과의사들의 나눔 문화를 잘 알고 있다면 부정적인 시선도 줄어들 것이다. 선행을 숨기는 것만이 미덕은 아니다. 필자는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도 잘 볼 수 있도록 개방할 것을 권한다. 치과의사 이미지도 개선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봉사활동에 끌어들이는 시너지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우선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것은 어떨까. 고객, 즉 자신의 환자들에게 자신의 봉사활동에 대해 얘기해주고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1+1이 3, 4가 될 수도 있다.
지역에 기반을 둔 봉사활동도 고려해 볼만하다. 멀리 있는 사회적 약자를 찾아가 무료진료를 하는 것도 좋지만, 공휴일이나 특정일을 지정해 치과의사들이 자신의 병·의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그 지역의 사회적 약자들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무료 진료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사회적 약자들에게 진료 바우처를 제공하는 방법은 어떨까. 그렇게 하면 그들은 원하는 시간을 선택해 무료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집단배식을 하듯 줄을 서서 진료 받는 일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들도 ‘정당한 진료’를 받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