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7일은 내게 천당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 날이다. 내가 전국 치과대학 영어 논문 발표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날이기도 하지만 아버지께서 건강이 악화되어 응급실로 실려 가신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치과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늦은 나이에 수능을 다시 준비하고 있을 2004년 7월에 간암진단을 받으셨다. 간의 70퍼센트를 절제해야 하는 대수술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수능을 준비하는데 행여 피해를 주실까, 수술이 끝날 때까지 나에게 비밀로 하셨다. 다행히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에야 아들 목소리가 정말로 듣고 싶다고 눈물을 흘리시며 내게 전화를 주신 분이 우리 아버지이시다.
아버지의 간암 소식이 내게는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채찍질이 되었고, 이런 노력 끝에 치과대학에 합격하게 되었다. 아버지께 합격소식을 전화로 전해드리면서, 아버지와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시간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아들로서 아버지께 힘이 되어 드릴 수 없는 나약한 존재로만 생각되었는데, 아버지께서 너무 기뻐하시는 모습에 내가 아버지를 위해서 해드릴 수 있는 일이 공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아버지의 간암 투병도 4년 반을 향해 접어들었고, 이때 내게 우리학교 대표로 전국 치과대학 영어 논문 발표대회에 나갈 기회가 주어졌다. 아버지께서는 내심 내가 입상하기를 바라는 눈치셨다. 나 역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라도 입상을 하고 싶었다.
아버지의 믿음 때문이었을까? 대상 수상자를 발표하는 순간 나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내 이름이 호명되는 것이 아닌가. 긴장을 해서인지 교내대회 때보다 발표를 잘 못해 입상은 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대상을 받고 기쁨에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는데, 황달이 너무 심해지셔서 탈진상태로 앰뷸런스를 타고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올라가고 계셨던 것이다. 아픈 상태에서도 수상소식을 들으시고 말없이 눈물로 기쁨을 대신하셨다고 한다. 아버지께 조금이라도 힘이 될까봐 신문에 나온 나의 기사들을 스크랩 해다 드렸다. 아프셔도 간호사들에게 신문에 나온 아들 자랑은 꼭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결국 암이 심장으로 전이가 되어서 한 달 후에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의 시신을 화장할 때, 내 기사가 난 신문 스크랩들을 관속에 넣어드렸다. 늘 개원하면 그 때 효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아버지께 바쁘다는 핑계로 잘 해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 가슴 아팠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시다면 매일 전화를 드려서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내일이면 아버지의 49재다. 이 글을 흔쾌히 쓰고 싶었던 이유도 바로 내일이면 하늘나라로 가셔야 하는 아버지께 이 글을 전해드리고 싶어서였다. 워낙 무뚝뚝하신 아버지셨기에 사랑표현을 할 기회가 자주 없었다. 하지만 이젠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다.
“아버지 그동안 훌륭하게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말고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