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한국에서 개최할 국제학술대회의 준비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Skype로 전화한 저널 편집장은 시작부터 집회이야기를 꺼낸다. ‘쇠고기 수입문제로 오늘 집회가 있었다는데, 자네도 갔는가? 사람들이 또 다쳤는가?’ 치의학교육관련 워크숍을 준비하느라 아침부터 분주하던 최근 어느 날, 서울에 살고 있는 절친한 외국인 교수가 BBC World 뉴스 내용을 문자 메시지로 보내왔다. ‘용산에서 시위하던 사람들이 죽었다는데 들었나?’ 바쁜 일에 골몰한 서울사람조차 알기도 전에 서울 도심의 한 복판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전 세계인들에게 생방송된다. 이제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만 23만명. 한국은 이제 국제화된 도시임에 틀림없고,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다.
연말에는 태국에 갈 일이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시위대에게 점령되었던 스완나폼 공항은 이미 질서가 회복돼 있었고, 특히 공항에서 순서대로 손님을 태우고 미터대로 가격을 부르는 택시기사들은 방콕에 대한 좋은 첫인상을 안겨 주었다. 또한, 여행 내내 만났던 사람들의 친절함과 예의바름은 태국사람들의 캐릭터와 시민의식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게 했다.
일정의 마지막 날. 우리는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에메랄드 사원과 왕궁을 갔다. “내려서 쭉 직진하면 입구와 매표소가 있어요” 라고 하면서 택시기사는 우리 일행을 내려주었다. 택시에서 내려 몇 걸음 걸었을 때 관리직원처럼 보이는 사람이 매표소 위치가 바뀌었으니 반대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의 안내를 따라 약 20미터 쯤 되돌아갔을 때, 비슷한 옷을 입은 또 한 사람의 관리인이 보였다. 우리는 매표소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려고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자 그는 “지금 왕궁의 승려들이 기도회를 하는 시간이라 표를 사도 들어갈 수 없어요. 택시타고 15분 쯤 가면 또 다른 왕궁이 있는데 거길 돌아보고 오면 다시 입장가능한 시간이 되겠네요” 그러면서 “저기 저 택시(tuk tuk) 타고 가시면 되겠네요” 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의 안내를 따라 뒤를 돌아보니 택시 한 대가 있고, 기사는 어서 타라는 듯 아주 친절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일행 중 한 사람이 좀 이상하다며 원래 타고 왔던 택시기사가 알려준 대로 다시 가보자고 했다. 놀랍게도 우리는 거기서 매표소를 찾을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순서대로 입장하는 것을 보았다. 순간 우리는 뒤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서 표를 사들고 다시 관리인 행세를 하던 사람들에게로 갔다. 그들은 또 다른 관광객을 대상으로 수작을 걸고 있었다. 우리는 중간에 끼어 들어 표를 보여주면서 “이 사람들도 저 택시에 태워 보내려고 하는 건가”하고 호통을 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You are disgracing your country!” 그러나, 관광객들의 푼돈이나 챙겨서 사는 협잡꾼들에게 이런 메시지가 과연 무슨 의미를 가졌을까?
국제화 사회에서 윤리적 민감성의 수준은 경쟁력의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동과 통신이 자유로워진 요즈음, 한 국가나 사회가 신뢰할만한 곳 인가의 여부를 가늠하기는 매우 쉬워졌다. 국제적으로 통용될만한 윤리적 예민성을 가지지 않고서는 경쟁의 대열에조차 당당히 나서기가 힘들다. 이 잣대를 통과하지 못한 여러 국가들은 여전히 ‘일류기술 삼류정신(first world technology with third world mentality)"의 국가라는 오명을 벗지 못한다. 여기에는 남을 속이거나 사실을 은폐하지 않는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부터 ‘이러한 것도 과연 윤리적 문제가 될 수 있는가?’ 싶을 정도로 아주 미묘한 것들이 해당된다. 특히, 어려운 것은 의사나 학자와 같은 전문직업인의 경우 국제사회에서 후자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치과의사 집단의 자율적인 윤리적 자정을 실천하기 위한 윤리기구의 설치, 국제시민으로 양성하기 위한 인문·사회적 소양의 교육, 양성과정의 질을 점검하며 관리하는 치과대학 인정평가 제도 등은 치과의사 집단의 윤리적 민감성을 높이고 그 수준을 국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