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7시 자명종 시계가 “빨리 일어나세요”라고 요란하게 울려댔다.
"서은아, 성민아! 일어나야지?”
"아빠! 오늘 무슨 요일이야? 월요일이야?" 이제 8살이 된 큰 딸이 눈을 비비며 물어보았다. 주일날 너무 일찍이라 일요일이 아니라 월요일인 줄 착각한 듯 했다.
“아니 일요일이야, 오늘 봉사활동 때문에 교회를 일찍 가야 돼. 그러니 빨리 일어나. 동생도 빨리 깨우고."
치과대학을 다닐 때도 봉사활동을 한번도 안한 내가 이제 나이가 40살 쯤 되어 가니 철이 드는 걸까, 난데없이 의료봉사활동을 다니게 되었다. 의료봉사활동을 갈 때는 아내랑 아이들을 꼭 데리고 간다. 조금은 쑥스러운 것도 있고, 치과는 혼자서는 진료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도와주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입 속에 있는 충치니 풍치니 하는 질환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입 속을 잘 볼 수 있게, 보조원이 손전등을 비춰줘야 하기 때문이다.
의료봉사라고는 하지만 모든 진료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간단한 충치치료나 잇몸치료, 틀니 수정, 발치, 경우에 따라 턱관절 장애 환자의 물리치료 등을 시술해 준다. 주로 애들을 데리고 다니기 때문에 너무 먼 지방까지는 가기가 어렵다.
지난달에는 경기도 연천을 갔었는데, 치과의원이 없는 지역이었다. 요즘 불경기이고 치과의원들이 많이 생겨 경기도에 치과가 없는 지역이 있다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첫번째 환자분은 관절염이 있으신 60대 할머니 환자분이셨는데, 틀니 지대치가 흔들흔들 하셔서 발치를 원하셨다. 그러나 건강 상태가 너무 안 좋으셨다. 고혈압, 당뇨 등등 많은 전신질환이 있으셔서, 발치하기가 조금 꺼려져서, 잇몸치료만 해드릴려고 환자분께 “할머니! 상태가 안 좋으시네요. 치아를 빼셔야 되는데 틀니거는 치아라 이를 빼면 틀니가 안 맞을 거예요. 내일 치과에 가셔서 상담하시고 이를 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할머니께서는 어짜피 치아가 아파서 틀니를 못 끼니 치아를 빼달라고 하신다. 그러시면서 부연설명으로 이 동네에는 치과가 없어서 치과에 한번 갈려면 택시를 타셔야 한다고 하셨다. 이유인 즉 관절염 때문에 다리가 아파서 버스를 타지는 못하고 집 앞까지 택시를 불러서 갔다가 이를 빼고 다시 택시를 타고 와야 한다고 꼭 빼달라고 하셨다.
말씀을 들어보니 ‘내가 너무 성의없게 진료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찮은 진료는 안하고 그냥 시간 떼우기에만 급급한 듯한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의료봉사팀에 약사 분이 같이 다니셔서 약을 처방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고, 다행히 다이오드 레이저를 가지고 왔기 때문에 충분히 지혈을 시킬 수가 있었다.
그 이후로 상당히 많은 환자분을 치료하고 나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처음에는 큰 딸이 손전등을 비추고 있었는데, 5살이 되는 둘째 딸이 자기고 하겠다며 떼를 썼다. 손전등을 들고 있는 것은 지루하고 힘이 들었을 텐데, 아이들한테는 재미있는 놀이인 것 같았다. 아내는 옆에서 기구준비와 물컵준비, 환자분이 끝나시면 양치물 치우기 등을 도와주었다.
일요일에 시간을 내서 진료하는 것은 힘이 들지만, 진료내내 가족들은 ‘남편이 아빠가 이렇게 일하는구나’라는 것을 가족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시간이어서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추억이 되고 있다.
아내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은 진료할 때 가장 멋있어”
언제까지 봉사활동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살아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