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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4)개원의 단상/안미애

“야, 너무 상쾌하고 살맛난다. 너도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일해!”


전화선 너머 쾌활하고 명랑한 분위기가 전해집니다. 졸업 후 쉬지 않고 치과를 하다 개인사정으로 잠시 접은 동기가 골프 치러 밖에 나왔다며 전화해서 나에게도 탁 트인 바깥 공기를 느끼게 합니다. 진료의 스트레스나 경영의 압박에서 벗어나 한없이 편해 보이는 친구가 마음 한 편 한없이 부럽고 또 부럽습니다. 좋겠네, 좋겠네….


갈수록 할 일이 많아집니다. 예전에 비해 아주 많이 야무져지고 똑똑해진 환자들 상대로 아픈 곳을 치료할 뿐 아니라 마음까지 만족시켜 줘야 하고, 치과 재료 하나하나 구입 날짜, 구입 단가까지 챙겨야 하고, 국세청 비보험 신고를 위해 늦게 남아 입력해야 하고, 따라가기 힘든 직원들 마음도 헤아려야 하고, 기대에 못 미친 큰 애, 둘째의 학업 때문에 마음 한켠은 늘 무겁고 조바심 나고, 아! 나도 모르겠다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느슨해져 있으면 어디선가 구멍이 뚫려 새는 소리 들리고….
치과의사가 아닌 사람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까봐 딱히 힘들다고 드러내기도 어쭙잖으니 처지를 아는 동기들끼리만 수다를 떨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힘들다는 소리도 쏙 들어갔습니다. 자기 몸보다 몇 배는 커 보이는 리어카에 파지며 종이박스며 가득 싣고 한 걸음 한 걸음 온 몸을 내던지며 비틀거리는, 보기에도 너무 작은 할머니의 모습이라든지, 경제가 어려워서인지 생활이 너무나 힘들어 보이는 두껍고 터지고 무뎌진 환자들의 손가락을 우연히 볼라치면 내 사는 모습이 얼마나 행복한지, 감사한지, 그리고 미안한지….
나보다 편히 살아 보이는 사람들만 눈에 넣고 비교하고 내 자신에 대해 처량해하고 만족하지 못했던 마음이 아침안개 사라지듯 없어집니다. 겨울이면 히터를 진료실 대기실 두 대나 틀며 진료하는 저의 귀에 생선 파는 노점상 아저씨의 마이크 소리가 슬프게 들립니다. 나이가 마흔을 넘기다 보니 사람 사는 게 다 별 거 아니구나 싶고 누구나 행복하고 사랑받으며 살고 싶은 것을 봅니다. 고생하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마냥 놀기만 하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만만치 않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 치과의사들은 행복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모아놓은 것도 없지만 그동안 베풀지 못하고 산 것 같아서 요즈음은 미안해질 때가 간혹 있습니다.
벌써 치과의사로 사회에 나온 지 몇 해만 있으면 20년입니다. 지난 세월은 철이 없었다 치고 이제는 좀 더 잘 살아보길 기대합니다.


오늘도 잇몸이 나빠 치아 사이에 음식물이 낀 것을 보철이 잘못 돼서라고, 가만히 안 있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환자분 때문에 기운이 빠지고 쳐지지만 힘을 내서 기쁜 마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치과의사의 삶은 잘 되고 못 되고의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가 다 서로 공감하며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항상 힘을 주며 곁에 있어 든든한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