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를 아시나요?
한 달 전에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면 나는 당황하면서도 불쾌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그곳은 내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해야 할 누군가가 살고 있는 곳이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시작은 늘 어렵다. 치과대학에 입학하고 많은 봉사활동을 다녀봤지만 사실 내가 보아온 많은 봉사의 장은 정상인의 세상 속에 있는 장애우의 세상이었다. 한, 두 번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나는 어쩌면 이들에게 하는 봉사는 가진 사람으로서 조금 덜 가진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라 여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록도 봉사활동은 이런 나에게 봉사의 다른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우리 학교는 여러 사회 보건 홍보 및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는데 소록도 봉사는 소록도 병원에 계셨던 학교 선배님의 교내 방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모교에 찾아오셨던 선배님께서는 자신의 꿈과 소록도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는데 사실 그 강연은 나에게는 허물벗기 같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나는 한센인에 대해 가까이 하고 싶지 않고 무서운 존재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의 누군가가 닫혀 있던 다른 세상 속에서 많은 이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조금씩 움직이게 했다. 본격적인 봉사활동이 학교 차원에서 진행되었지만 나는 또다시 나의 세상에 바쁘게 살아가면서 번번이 그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나는 본과 4학년이 되었고 환자를 직접 만나면서 다시 진정한 진료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다시 한 번 소록도 봉사의 기회가 주어졌고 나는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디디게 되었다.
버스로 몇 시간을 달려 소록도 가는 배를 타는 곳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 나는 소록도와 육지의 거리에 놀랐다. 헤엄쳐서 건널 수도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내가 그렇게 어려워했던 소록도가 있었다. 5분 만에 바다와 나의 마음의 벽을 넘어서 소록도에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우리는 병원 봉사 시 주의 사항을 듣고 바로 병동으로 향했다. 나는 중환자 병동을 맡게 되었는데 30 여명의 한센인들이 함께 계셨다. 원래는 더 많으셨지만 얼마 전 고비를 넘기지 못하셨다는 말씀도 들을 수 있었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특유한 냄새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병실마다 인사를 드리는 우리들에게 그분들은 짧은 손가락 마디를 내밀며 악수를 청하셨다.
“반갑다. 어디서 왔노?”
손을 잡을 수 있을까? 눈을 마주볼 수 있을까? 나는 계속 스스로를 시험하고 있었다. 일단은 다른 학생이 손을 잡아드리고 나의 고민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남은 시간동안 이런 일들이 계속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계속해서 기저귀 교체와 수건으로 세수시켜 드리기 등의 작은 봉사가 계속되었다. 그때마다 내가 찾아가서 도와 드리는 그분들 한 분 한분이 모두 내가 어떤 아이인지 궁금해 하셨다. 과일을 꺼내주시거나 앉아서 같이 텔레비전을 보자고 하시거나 하는 정말 일상적인 일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문득 내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이분들께 손님으로 온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사실 나는 그분들께 봉사를 한다기 보다는 그 분들이 사시는 곳에 들어와서 함께 이야기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 분들은 내가 어떤 운동을 좋아하고 어디에 사는지 이야기 하고 싶으신 것이지 내가 얼굴을 닦아주거나 컵을 씻어주기 위해 반가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